설움 가득한 막내 "안나와 키스신 NG 한번도 없었어요"

tvN '또 오해영'이 1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케이블 채널 월화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것은 주연뿐 아니라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하는 조연들의 열연에 힘을 입고 있다.

극 중 박도경(에릭 분)의 동생으로 띠동갑 안나(허영지)와 불꽃 같은 연애를 하는 박훈 역의 허정민(34)을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허정민은 "처음에는 시청률이 3%만 나와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말도 안 되는 시청률에 매일 놀라고 있다"며 "촬영장은 축제 분위기"라고 털어놨다.

'또 오해영' 팀은 다음 달 3일 태국 푸켓으로 포상휴가를 떠난다.

허정민은 "데뷔한 지 20년인데 한 번도 포상휴가를 못 갔다. 이번에 드디어 한을 푼다"며 껄껄 웃었다.
 배우 허정민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배우 허정민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 "자주적이지 않은 훈이, 주변에서 만들어줬죠"

그는 자신이 맡은 박훈 역할을 "그리 자주적이지는 못한 캐릭터"라며 "주변 인물 덕에 풍성해진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도경과 훈의 관계는 그야말로 큰 형과 막냇동생의 관계. 형이 동생의 머리를 밀고 있고 동생은 허공에 주먹질을 해대는 그림을 상상했단다.

허정민은 "사실 저는 외동이라 형제간의 감정을 잘 알지는 못하는데 어릴 때 친구네 놀러 가서 봤던, 상대도 안 되면서 형에게 덤비는 동생들의 모습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극 중 훈은 수경(예지원)-도경과 피가 섞이지 않았다.

엄마 허지야(남기애)가 재혼했던 남자의 아들이다.

그래서 수경은 훈이에게 엄마와 같은 존재라고.

오해영(서현진)이 30대 초반 여성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다면, 박훈은 작가라는 꿈과 재능이 없다는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이다.

"솔직히 저도 30대 중반이 되다 보니 훈이를 보면 도경이 말처럼 형 말만 들으면 평생 밥 먹고 사는데 왜 저럴까 싶을 때가 있어요.밥을 굶을지언정 꿈을 먹고 사는 게 좋다는 거, 저도 해봐서 알고 있지만 이게 힘들 때도 많아요.특히 훈이는 주변에서 입을 모아 재능이 없다고 하잖아요.꿈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할 줄도 알아야죠."

초등학교 4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아역 배우가 됐고 10대 후반엔 '문차일드'로 가수 활동도 한 그지만 20대 후반엔 지독히도 일이 안 풀렸다.

그래서 그는 지금을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이 또한 지나갈 테지만 즐길 수 있을 때 즐기겠다는 유쾌한 각오도 전했다.

◇ 송현욱 PD와는 악어-악어새 관계

그는 지난 2014년 방송한 tvN '연애 말고 결혼'을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표현했다.

'또 오해영'의 송현욱 PD가 연출했던 작품이다.

"당시에 감독님이 좀 돌려서 말씀하셨지만 '너 이것도 잘 안되면 그만하자'는 식으로 말씀하셨어요. 감독님이 조연출일 때부터 여러 작품을 함께 했는데…. 그만큼 제가 안 돼 보이셨나 봐요. 절박했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다행히 잘됐고, 감독님과 또 만나게 됐네요."

사적으로 술자리를 가질 정도로 송 PD와 가깝다는 그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로 표현했다.

허정민은 "저는 감독님이 뭘 원하시는지 말하지 않아도 경험으로 잘 파악할 수 있고, 감독님 입장에선…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제가 편하실 것"이라고 장난스레 말했다.

첫 드라마 출연에서 띠동갑인 자신과(두 사람은 실제로도 띠동갑이다) 진한 애정 연기를 해야 하는 허영지가 부담이 될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리드했다는 그는 "그래서 단 한 번도 NG를 내지 않았다"며 "NG를 안 내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감독님이 너무 다 한 번에 오케이를 외치셔서 솔직히 좀 섭섭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동료 연기자들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그는 "수경 역은 작가 선생님이 예지원 누나에게 주려고 쓴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예지원 말고 누가 그 역할을 하겠나"라며 "처음에는 도대체 어떻게 리액션을 해야 하는지 고민까지 됐다"고 예지원의 연기력에 에둘러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 "팀워크 최고…드라마 끝나면 제 SNS 주목해주세요"

"촬영도 촬영인데 거의 같이 노는 거예요." "이건 뭐 드라마를 찍자는 건지 개그를 하자는 건지"

인터뷰 도중 허정민이 전한 '또 오해영'의 촬영장 분위기다.

자신의 SNS를 통해 동료들과 함께한 사진을 자주 올리는 그는 "드라마 몰입에 방해가 될까 봐 많이 참고 있다"며 "드라마 끝나고 대방출하겠다"고 선포했다.

특히 극 중에서 진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에릭이 본모습을 많이 숨기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는 SNS에서 자신을 '로코요정'이라고 칭한다.

"로코퀸도 있고 로코킹도 있는데 로코요정은 없더라. 로맨틱코미디를 워낙 좋아해서 누가 별명으로 가져가기 전에 선점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배우로서 제 목표는 오래오래 살아남는 거예요.개런티를 얼마 받겠다, 이만큼 연기를 잘하겠다는 그런 욕심은 부리지 않으려고요. 조금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밑에 것들한테 치이지 않고 위에서 까이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순재 선생님만큼 오래오래 할 겁니다."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chom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