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대박’
SBS 월화드라마 ‘대박’
드라마든 영화든 팩션(역사적인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것)은 넘쳐나지만 재미있기는 어렵다.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빈틈을 찾아내는 것은 쉬워도 안성맞춤으로 허구를 끼워 넣어 공감을 끌어내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는 말도 있다. SBS 월화드라마 ‘대박’(연출 남건, 극본 권순규)은 그런 면에서 분명 잘 만든 팩션에 속한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 중기 숙종(최민수 분) 시대. 자연스레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떠오르지만 중심인물은 숙빈 최씨(윤진서 분)다. 드라마는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여진구 분)의 친모 숙빈 최씨가 무수리(세탁이나 설거지 등 허드렛일을 하는 일종의 궁중 임시직)였다는 사실에 착안해 유부녀임에도 숙종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됐다는 가설로 시작한다.

숙빈 최씨의 첫 남편 백만금(이문식 분)은 도박에 미쳐 살다가 숙종이 건 내기에 지고 아내 최씨를 빼앗긴다. 속임수에 당한 것을 알고 숙종에게 목숨을 건 내기를 청해 최씨를 찾을 기회를 얻지만 결국 버림받는다. 6개월 뒤 최씨가 낳은 아들이 핏줄을 의심받아 버려지자 친아들이라 생각하고 키운다. 바로 가상 인물인 주인공 백대길(장근석 분)이다. 왕재로 태어났으나 천하게 살 운명인 백대길은 태어나면서부터 내기 속에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다. 존재 자체가 숙종의 내기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대박’에서 가장 주목할 공간은 2층 규모의 대형 투전방. 수백명이 달려들어 도박하는 장면은 현대의 카지노가 무색하다. 타짜 대길은 물론이고 숙종과 숙빈 최씨부터 담서(임지연 분)까지 참여하는 모든 내기의 구심점이 되는 공간이다.

“화폐경제가 발전한 숙종 때 도박이 성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고증된 공간은 찾지 못했다”는 남건 PD의 말처럼 상상의 세트다.

이 드라마의 내기는 타짜로 살아간 백만금이 백대길을 숙종의 아들이라고 생각한 순간 아이를 절벽에서 강으로 던져 생사를 실험하는 순간부터 극대화된다. 엽전의 앞면이 나오는 내기나 술 한 병에 몇 잔이 나오는지 정도의 내기는 애교다. 화살을 정통으로 맞았는데 살았는지, 팔다리를 부러뜨려 심장까지 찌르고 절벽에서 떨어뜨린 뒤 살아서 돌아오는지 등 내기의 질은 갈수록 극적으로 치달으며 ‘슈퍼맨 대길 만들기’로 전락한다.

‘아시아의 프린스’라고 불리는 장근석이 힘을 빼고 백대길의 인생 역정에 흡수돼 가는 모습은 박수칠 만하다. 여진구의 굵다 못해 변조된 듯한 목소리와 강렬한 눈빛도 무시할 수 없다.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