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고선웅 마방진 대표,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 박근형 골목길 대표
왼쪽부터 고선웅 마방진 대표,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 박근형 골목길 대표
활발한 극작·연출 활동으로 한국 연극계를 주도하는 중견 연출가들이 나란히 신작을 들고 새봄 무대를 찾는다. 지난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각종 연극상을 휩쓴 고선웅 극단 마방진 대표(48), ‘그게 아닌데’ ‘사회적 기둥들’ 등으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연출가로 평가받는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52), 연극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아버지’ 등으로 현시대 소시민의 일상과 아픔을 묘사한 박근형 극단 골목길 연출(53) 등이 주인공이다. 개성 있고 뚜렷한 작품 세계로 고정 팬을 확보한 이들 연출가의 신작 대결에 연극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는 12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개막하는 고선웅 극작·연출의 연극 ‘한국인의 초상’.
오는 12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개막하는 고선웅 극작·연출의 연극 ‘한국인의 초상’.
고 대표는 오는 1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한국인의 초상’을 무대에 올린다. 극은 한국인의 단면을 담은 에피소드 27개로 구성된다. 고 대표 특유의 과장된 연기와 개그적인 동작 및 말투를 살린 ‘희화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극본은 배우들의 공동 창작으로 완성됐다. 배우들이 직접 신문 기사를 찾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 결과를 바탕으로 즉흥극을 선보였다. 그중 선별된 작품을 중심으로 고 대표가 극본을 썼다. 작품은 한국인의 어두운 단면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연극 말미의 사유 시간을 통해 씁쓸함은 털어내고, 자기 비하와 냉소가 아닌 자기 응시와 연민의 과정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김정환 백석광 등 국립극단 시즌단원들과 정재진 전수환 원영애 등 중견배우들이 함께한다.

김 단장은 29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셰익스피어 원작 ‘헨리 4세 파트 1&2-왕자와 폴스타프’를 선보인다. ‘미니멀리즘의 대가’답게 고전을 현대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재해석할 예정이다.

셰익스피어의 대표 사극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헨리 4세의 정치사를 다룬다. 헨리 왕자와 폴스타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김 단장은 이 작품을 올리는 이유에 대해 “권력의 역학관계, 인간의 욕망을 그린다는 면에서 작품이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옷을 입고, 무대에는 패널만 설치하는 등 현대적인 무대가 될 것”이라며 “헨리 왕자의 권력욕과 더불어 인간적인 고뇌를 그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좌우로 이동하는 무대 패널에 심리적 정황을 표현하는 영상을 투사할 계획이다. 서울시극단 터줏대감 이창직이 폴스타프 역, 연극 ‘레드’ ‘올드 위키드 송’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신예 박정복이 헨리 왕자 역을 맡았다.

박 연출은 10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초연한다. 2015년 한국, 1945년 일본 오키나와, 2004년 이라크 팔루자, 2010년 한국 서해 백령도가 시대적·공간적 배경이다. 젊은 한국 탈영병과 일제강점기 말 일본 가미카제특공대가 된 조선인, 이라크에서 미군 식품업체에 배달하다 납치된 평범한 선교사, 서해에서 선박 침몰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다양한 음악, 자막과 영상 등 다큐멘터리적 요소들이 현실과 연극적 환상을 넘나드는 장치로 활용된다.

극본을 직접 쓴 박 연출은 “이 작품을 통해 군인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죽음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기억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겨울이야기’에서 좋은 연기를 펼친 박윤희,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열연한 성노진 등이 출연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