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명성황후…눈빛연기 어려웠죠"
수애(30)는 '고전 미인'으로 통한다. 단정한 이목구비와 차분한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삶의 무거운 짐을 자신의 숙명으로 기꺼이 짊어지는 영화 속 배역 때문일 터다.

적어도 데뷔작 '가족'을 비롯해 '님은 먼 곳에''그해 여름' 등 대표작들에서 그랬다. 총제작비 90억원을 투입해 추석 시즌에 개봉하는 사극 대작 '불꽃처럼 나비처럼'(24일 개봉)의 명성황후 역도 이런 이미지의 연장선에 있다. 그녀는 호위무사 무명 역 조승우로부터 지순한 사랑을 받는 국모 연기를 펼쳤다. 3일 서울 태평로 한 호텔에서 수애를 만났다.

"명성황후를 다룬 작품들은 수없이 많아요. 그런데 강인한 국모로서뿐 아니라 사랑에 감응하는,여린 여인의 모습을 동시에 그린 영화는 처음일 거예요. 저로서는 순애보를 간직한 여인 역에서 벗어나 모두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여인 역을 해냈다고나 할까요. "

극중 그녀는 고종의 아내로 호위무사를 가슴에 품는다. 이 때문에 드라마는 시종 고종과 무명,명성황후 간에 팽팽한 삼각관계로 전개된다. 그러나 명성황후는 조선의 국모로서의 족쇄를 벗어날 수 없다. 무명을 향한 사랑도 눈빛으로만 표현해야 한다. 결코 들켜서는 안될 금기의 사랑인 것이다.

"눈에 하트를 그리며 무명을 바라보고 싶지만,그것을 절제된 양식으로 표현해야 했어요. 다행히 승우씨가 무명에 대한 긴장감과 설렘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도록 촬영장 안팎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어요. 복무 중인 승우씨와는 동갑이지만 친구같은 사이는 아니거든요. "

영화는 특히 위엄보다 호기심 많은 여인으로 명성황후를 소개한다. 프랑스인과 와인을 마시고,코르셋을 입고 서양식 드레스를 입은 모습도 선보인다. 조선의 국모가 자신의 몸매를 드러낸다는 발칙한 상상을 덧입힌 셈이다. 고종과의 베드신도 화젯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설정은 쇄국정책을 펼친 대원군과 대립각을 세우는 개화파 수장임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명성황후 역을 또다시 제안받는다 해도 수락할 거예요.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역할이거든요. 일본인들이 '민비'로 폄하하고 왜곡한 사실들도 거듭 바로잡고 싶어요. 이번에 명성황후 역을 하면서 제 자신과 연기를 재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했어요. 그동안 배우는 자세로 연기했다면 이제는 제 재능과 연기력을 펼쳐보이고 싶어요. 서른을 넘기니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

작년 7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촬영은 힘겨웠다고 한다. 머리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왁스와 스프레이를 달고 살았다. 한복을 입은 채 구김이 가지 않도록 꼿꼿한 자세로 촬영에 대기해야 했다. 옷을 겹겹이 껴입은 채 더위와도 무진 싸웠다.

"땀으로 메이크업이 지워지기 일쑤였어요. 나중에는 얼음으로 체온을 내리곤 했어요. 화성 경주 문경 등 전국 각지 촬영장에서는 모기가 극성을 부리더군요. "

고생한 만큼 보람도 크다고 했다. 수애는 "순수한 자세로 찍었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스며들었다"며 "역사와 재미,볼거리를 두루 갖춘 화제작인 만큼 관객들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