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뮤지컬계에는 지금 '오리지널 렌트 열풍'이 뜨겁다. 지난 13일 저녁 도쿄 아카사카 ACR극장.1996년 초연 이후 13년간 전 세계에서 사랑받아 온 뮤지컬 '렌트'의 원년 멤버 아담 파스칼(36 · 왼쪽)과 앤소니 랩(37)의 열연을 보기 위해 1300여명이 모였다.

이달 7일부터 시작한 도쿄 투어공연 티켓은 1300석의 좌석은 물론 약 100여석의 입석마저 한 달 전에 모두 팔렸다. 관객층은 머리가 희끗한 중년 부부에서 20대 젊은이들까지 다양했고,표를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1층 무대 뒤 입석(6000엔)에서 난간을 붙잡고 선 채 2시간30분의 러닝 타임을 함께 했다. 공연이 끝나자 10분 이상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석권하고 3억30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작품 · 흥행성을 인정받은 이 뮤지컬의 주인공 아담 파스칼과 앤소니 랩을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뒤에서 만났다.

"렌트를 해피엔딩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희극과 비극의 중간쯤 아닐까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지 고민하게 만들죠.쓴맛과 단맛을 다 지닌 우리의 인생처럼요. 그래서 13년이란 긴 시간 문화와 언어가 다른 각국에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990년대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가난한 청년 예술가들의 꿈과 열정,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에이즈,마약,동성애 등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아름다운 음악과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파스칼은 기타 치는 뮤지션 로저 역,랩은 미디어 아티스트 마크 역을 맡았다.

20대였던 13년 전과 30대가 된 지금 같은 역을 연기하는 것이 어색하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파스칼은 "13년이란 시간은 예상치 못했던 명성과 많은 경험,내면의 성숙함을 가져다 줬다. 그러나 작품을 대하는 우리의 열정과 우정,창작자 조너선 라슨의 업적을 기리는 태도를 바꿔놓진 않았다"며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7년에 걸쳐 '렌트'를 창작한 조너선 라슨은 뉴욕 뮤지컬계의 신화적 인물.자신의 역작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기 직전인 35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던 두 주인공은 "리허설을 며칠 앞두고 폭설이 내린 워싱턴의 한 공원에서 눈싸움하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실제 뮤지컬 렌트의 등장인물들처럼 '방값'을 제때 내지 못하던 시절이 이들에게도 있었다. 랩은 "10여년 전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형과 친구들과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살 때 방값을 못 구해 애를 먹었는데 운 좋게 집주인이 갑자기 사라져 2~3년간 공짜로 지냈다"고 했다. 꽃미남 파스칼도 "맨해튼 헬스클럽에서 개인교사로 일할 때 여자 친구들이 방값을 내주기도 했다"며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뮤지컬 '렌트'는 일본에 이어 다음 달 한국 공연으로 공식 투어를 끝낸다.

도쿄=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