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분야의 개척자를 표방한 국산 블록버스터들이 이달 중 일제히 개봉돼 흥행 대결을 펼친다. 리얼 괴수를 다룬 '차우'(15일 개봉),물 재난 영화 '해운대'(23일),스키점프 세계를 그린 '국가대표'(30일) 등이 그것.총제작비 100억~200억원을 투입한 세 작품은 저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컴퓨터그래픽(CG)을 동원해 리얼리티를 높였다. 한국 영화 CG의 현주소를 가늠할 기회다.

신정원 감독의 '차우'는 어느 산골 마을에 참혹하게 찢긴 시체가 잇따라 발견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범이 변종 식인멧돼지로 밝혀지면서 김순경(엄태웅),전직 포수(장항선),동물 생태연구가(정유미),전문 사냥꾼(윤제문) 등이 추격대를 결성한다. '괴물''용가리''D워' 등 역대 국산 괴수영화들이 상상으로 창조한 괴물을 내세운데 비해 초대형 멧돼지를 주 캐릭터로 동원했다.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는 사람들의 일상사로 전반부를 끌어가다 후반부에 멧돼지와의 사투를 집중 조명한다. CG로 창조된 거대한 멧돼지는 생동감이 다소 떨어지는 게 흠.그러나 전체적인 몸동작과 털 등은 무난하게 묘사됐다.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는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이민기 등 인기 배우들을 화면에 등장시켜 100만명 인파가 몰린 해운대에 쓰나미가 닥치는 상황을 클로즈업한다. 불 재난을 다룬 '리베라메'등의 한국 영화는 있었지만 물 재난 영화는 처음.거대한 쓰나미가 덮친 장면들은 종반 30~40분 동안 펼쳐진다. 빌딩이 붕괴되고,사람들이 쓸려나가고,잠긴 물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물 묘사는 CG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에 한국 CG업체 모팩이 할리우드 물 재난영화 '퍼펙트스톰'과 '투모로우' 등에 참여한 전문가 한스 울릭을 초빙해 공동으로 작업했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최고 수준의 물 CG는 독일 업체가 개발해 미국 ILM사에 판매한 기술.이 때문에 '퍼펙트 스톰'과 '투모로우'에 독일계 감독인 볼프강 피터젠과 롤랜드 에머리히와 함께 독일계인 한스 울릭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호 모팩 대표는 "물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며 "어려운 조건에서 괜찮은 결과물을 끌어냈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는 태극마크와는 어울리지 않을 듯 싶은 사내들이 스키점프 국가대표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영화.하정우 성동일 김지석 김동욱 최재환 이재응 등이 출연한다. 강원도 평창에 약 8500㎥ 규모의 인공 스키 점프대를 마련했고 10대의 멀티 카메라로 하늘을 나는 스키점프 신을 포착해 현장감을 살렸다. 특히 전체의 3분 1을 차지하는 스키점프 장면이 관건.초고속으로 나는 스키점프 선수들의 얼굴 표정을 CG로 살렸고,국내에서 촬영한 경기장 신에 CG로 관중을 입혀 일본 나가노올림픽 장면을 만들어 냈다. 정성진 CG 슈퍼바이저는 "실제 배우들이 연기한 촬영본에 정교한 CG를 접목해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공간을 만들었다"며 "스키점프의 다이내믹함과 함께 배우가 실제로 뛰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CG는 흔히 '돈과 시간의 싸움'으로 일컬어지는 힘겨운 작업.전문가들은 국내 CG 기술력이 할리우드 최고 수준 대비 70~80%로 근접한 것으로 평가한다. 대자본으로 연구 · 개발(R&D)이 지속돼야 업그레이드되겠지만 할리우드 영화 제작비의 10%도 채 안되는 비용으로 이 정도 CG를 만든 것은 칭찬할 만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등급심사를 위해 세 작품을 모두 감상한 김정진 감독(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은 "할리우드 최상급 CG에 비해 세 작품의 CG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적은 예산으로 이 정도 품질을 냈다는 데 위안을 삼고 발전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