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씨 표류기'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웃음 폭탄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한강의 오리 배, 자장라면, 케첩 깡통, 영어 대화 등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재료들이다.

이 영화를 쓰고 만든 이해준 감독이 밤섬에 갇힌 남자 김씨(정재영)와 방안에 갇힌 여자 김씨(정려원)가 엮어 나가는 '김씨 표류기'의 촬영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화면에 가득차는 자장라면은 PPL?

영화의 여러 장면을 차지하며 큰 웃음을 책임지는 문제의 자장라면 제품은 PPL(간접광고)로 쓰인 것이 아니다.

이 감독은 "오히려 그 제품을 쓰기 위한 과정이 까다로웠기 때문에 PPL 의심을 받으면 억울하다"고 말했다.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동떨어져 지낸다면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서 쓴 거예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김씨와 공감하게 도와줄 도구가 필요했고, 그게 그 상품일 뿐이었던 거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효과는 만점이다.

일반 시사회가 열린 상영관 곳곳에서는 "자장라면 진짜 먹고 싶다"는 속삭임이 흘러나왔고, 화면 가득 자장라면이 들어찰 때는 탄식마저 새어나왔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 PPL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자 김씨가 방안에서 신고 돌아다니는 낡은 운동화와 남자를 관찰할 때 쓰는 고성능 카메라는 협찬을 받았다.

◇한국인들이 왜 영어로만 대화를?

두 김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만 대화한다. 이 감독은 "기호 같은 대화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구체적인 느낌을 뺀, 기호 같은 대화였으면 했거든요. 감정이 들지 않은 단순한 대화로 진심을 전할 수 있는지 묻는 거죠."

헬로(Hello), 생큐(Thank You) 같은 초간단 영어 대화는 관객에게 웃음을 안기다가 끝에는 감동까지 주려 하는 중요한 도구다.

◇밤섬에서 못 찍은 밤섬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김씨 2명만 등장하는 인물과 소재의 한계를 극복한 것은 제한된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한국판 로빈슨 크루소의 환경 적응기는 야생적이고도 낭만적인 숲 안에서 완성됐다. 그러나 숲 장면들은 밤섬에서 찍지 못했다. 밤섬은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이라 모래사장 장면밖에 찍을 수 없었던 것. 남자 김씨가 숲을 '탐험'하는 장면들은 충주, 청원 등을 돌며 촬영했다. 이 감독은 같은 숲인 것 같지만 이야기의 전개를 주변 환경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전반부에 김씨가 처음 표류해서 오게 된 숲은 날카롭고 경계의 대상으로 그리려 했어요. 그에 반해 후반부에서 김씨가 숲을 자신의 터전으로 받아들인 뒤에는 따뜻하고 온화한 숲으로 표현하려 했죠."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