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선생 문학과 삶 그림으로 형상화했죠"
"고(故) 박경리 선생님과는 생전에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출판사에서 박 선생님의 문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데 적합한 미술 작가로 저를 점찍어서 시작한 일이죠."

고 박경리 선생 1주기를 맞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에서 특별전(5~24일)을 갖는 한국화가 김덕용씨(48)는 "작년 6월 출간된 선생님의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마로니에북스)에 삽입된 그림 작업을 했다"며 "그때 그린 그림들을 이번에 전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생전에 박 선생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자연과 교감하는 삶을 누리신 걸로 알고 있다"며 "그의 삶과 사상이 작품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걸 포착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199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나무판에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변신했다. 그는 나무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이번 전시회에 책에 삽입된 그림 10여점과 근작 20여점을 출품했다.

그는 "우리 문단의 큰 봉우리이신 고인의 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지만,문학적인 편린들을 압축해 나가는 과정이 다소 까다로웠다"고 술회했다.

새로 작업한 20점은 모두 나무판에 전통 물감을 사용해 단청기법으로 그렸거나 자개를 박은 게 특징이다.

얌전히 개켜진 색동 이불,시골 어느 초등학교 졸업 기념사진,부끄러운 듯 반쯤은 문 뒤에 몸을 감추고 내다보는 소녀 등의 이미지가 어린시절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뒤주로 쓰였던 폐목에서 새 목재까지 나무판 위에 시각화한 그의 그림들은 일부러 굵게 선을 낸 결과 곰삭은 미감을 자아낸다.

한편 관람객들은 전시장 1층에서 박 선생이 평소 사용했던 재봉틀,호미,안경,만년필,토지 원고,사전 등 유품을 연보식으로 배열된 사진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유품 중에는 담배 1개비가 남아있는 담뱃갑이 눈길을 끈다. 이들 유품에서는 고 박경리 선생의 아스라한 문학적 향수를 건드리며 질박하면서 토속적인 정취가 물씬 풍겨온다. (02)519-08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