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의 봄' 프라다를 입다
서울 한복판,고풍스러운 경희궁 앞에 네 개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건물'이 등장했다. 이 건물은 원형,십자가,사각형,육각형을 각면으로 결합한 다면체의 구조물. 각각의 면들이 한 달에 한 번씩 회전하며 주무대가 되어 네 가지 형태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예를 들어 원형의 바닥면이 한 달 후에는 벽면이 되고,또 한 달 후에는 천장이 되기도 한다. 4월25일부터 육각형의 벽면에서 패션 전시를 시작해 6월26일 원형의 공간에서 영화 상영,한 달 뒤인 7월30일에는 십자 형태의 공간에서 현대미술 전시가 이뤄진다.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프라다'(PRADA)는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 등과 손잡고 오는 25일부터 5개월여간 경희궁에서 이 같은 내용의 '프라다 트랜스포머'(PRADA Transformer)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고정된 형체가 아니라 육각형-십자형-직사각형-원형이 결합된 높이 20m의 다면체 철제 구조물이 네 면으로 변형이 가능하게 만든 '트랜스포머'다. '프라다 트랜스포머'는 프라다가 시도하는 복합문화 이벤트. 그동안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 일대에서 해오던 문화행사를 건축과 엮어 이번에 서울에서 새롭게 선보이게 된 것.

프라다 트랜스포머 총예술감독 제르마노 첼란트는 22일 "움직임 자체가 컨셉트이고,한 장소에서 변화를 거듭하는 전시는 세계 최초"라며 "패션 · 영화 · 전시 · 건축이 하나로 맞물리는 이번 행사를 통해 한국인과 미래의 새로운 문화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시아 중에서도 한국을 택한 이유에 대해 "한국은 생동감 넘치는 데다 현대예술과 전통이 딱 맞물리는 시기에 와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와 비슷하다"며 "중국은 아직 준비가 안됐고,일본은 너무 앞질러 가버렸다"고 덧붙였다.

재미있는 건 '우리는 제품을 팔지 않고 아이디어를 팔 뿐이다'(We don't sell product, we sell idea)라는 프라다의 철학을 말해주듯 전시장 어디에서도 프라다 로고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프라다가 경희궁 앞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첫 행사는 '웨이스트 다운'(Waist Down)이라는 스커트 전시. 25일부터 한 달 동안 열리는 전시에는 미우치아 프라다가 발표한 1988년 첫 컬렉션부터 최근까지 작품 중 65점의 엄선된 스커트가 걸린다. 특히 패션을 전공하는 한국 학생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동덕여대 이화여대 홍익대 건국대 서울대 세종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7개 대학과 삼성디자인학교(SADI)가 참여했다. 2004년 일본 도쿄에서의 첫 전시 이후 중국 상하이,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로 장소를 옮겨 전시됐으며,서울전이 다섯 번째 순회전이다.

철골 구조물을 돌려 새롭게 꾸민 공간은 6월26일부터 한 달여 동안 영화관으로 바뀌며 영화평론가 엘비스 미첼과 공동 기획한 영화제가 펼쳐진다. 영화 '바벨'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선별한 영화들이 상영된다. 마지막 한 달 동안 구조물은 본격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변신한다.

다소 엽기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여 온 스웨덴 출신 작가 나탈리 뒤버그의 설치미술전 '턴 인투 미'가 열린다. 뒤버그는 작은 점토 인형들이 초현실 세계에서 교류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발표한다. 구조물에 3차원의 건축물이 들어서고 스웨덴 작곡가 한스 베르그의 음악을 배경으로 지난해 4월 프라다재단에서 선보인 작품에 신작을 추가해 내놓는다.

마지막 행사인 '비욘드 컨트롤'에선 프라다 재단이 소장한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된다.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CEO 파트리지오 베르텔리 부부가 이끌고 있는 프라다 재단은 1993년부터 이탈리아 밀라노의 공장지대를 개조한 전시장에서 조각전을 열고 예술평론 서적 등을 출판해왔다. 프라다재단을 통해 10년여 전부터 밀라노 교회에 미술 작가 댄 플라빈의 작품을 설치하는 등 예술가들과 공조해 도시 환경 및 건축과 접목을 시도하는 프로젝트도 선보였다. 한편 25일부터 진행될 '웨이스트 다운' 전시는 무료로 진행되며 홈페이지 (http://prada-transformer.com) 예약을 통해 입장할 수 있다.

글/사진=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