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후광', '고정팬 유지'는 옛말
가차없는 시청자 평가, 시청률에 반영돼


요즘 방송가 사람들은 "시청자들 눈은 못 속인다"는 말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대박' 드라마의 후속작은 전작의 후광에 힘입어 상당한 '어드밴티지'를 누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전혀 안 통한다.

또 일단 정상 궤도에 오른 드라마는 고정 팬들을 등에 업고 탄탄대로를 달렸지만 이 역시 옛날이야기다.

그만큼 요즘 시청자들이 냉정해졌다.

재미가 없으면 가차없이 채널이 돌아가거나 TV가 꺼진다.

프로그램을 대하는 시청자들의 판단과 행동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후광 효과는 없다


MBC '에덴의 동쪽' 마지막회가 방송된 지난달 10일 TNS미디어코리아 집계에 따르면 3사 월화드라마 시청률 합계는 '꽃보다 남자'(31.2%), '에덴의 동쪽'(30.1%), SBS '자명고'(4.1%) 등 65.4%에 달했다.

그런데 '에덴의 동쪽'과 '꽃보다 남자'가 종영된 후 이달 6일 기록을 보면 시청률 합이 뚝 떨어졌다.

MBC '내조의 여왕'(20.0%), '자명고'(11.5%), KBS 2TV '남자이야기'(6.6%)로 합계 38.1%에 그쳤다.

3개 드라마 합계가 '꽃보다 남자' 마지막회 시청률(34.8%)과 불과 3.3%포인트 차이다.

'꽃보다 남자'를 보기 위해 안방극장에 돌아온 10대 시청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탓이다.

이민호 등 F4가 출연한 '꽃보다 남자'가 끝나자 10대 팬들은 더 남아있지 않았다.

이에 '꽃보다 남자' 후속인 '남자이야기'는 울상이다.

박용하 등 스타들이 출연하고 '태왕사신기' 등의 송지나 작가가 극본을 쓰지만 10대 취향에 맞지 않았던 탓인지 전혀 후광을 보지 못했다.

이제 전작의 인기가 큰 의미가 없다.

오로지 프로그램 자체로 평가받는 시대가 됐다.

◇영원한 1등도 없다


전작 효과는커녕 잘나가던 드라마도 더 강한 상대를 만나면 바로 타격을 입는 게 요즘 현실이다.

과거에는 큰 인기를 누리며 독주하는 드라마의 아성을 깨기가 쉽지 않았으나 상황이 변했다.

송승헌 주연의 '에덴의 동쪽'은 시청률 30%를 돌파하는 큰 인기를 누리며 지난해 MBC 연기대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1월부터 방송된 '꽃보다 남자'의 돌풍으로 월화극 1위 자리를 내줬고 시청률은 20%대 초중반으로 주저앉았다.

방송가에서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곳곳에서 시청자들의 달라진 자세가 엿보이고 있다.

기본 시청률이 30% 라고 불릴 만큼 충성도 높은 시청자들의 안정적인 지지를 받던 KBS 1TV 일일극은 최근 10% 대로 시청률이 하락해 고전하고 있다.

SBS 일일극 '아내의 유혹'은 올해 초반 시청률 40%를 넘기도 했지만 극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등 비판을 받으면서 시청률이 하락해 20% 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점점 빨라지는 사이클

예능도 예외는 아니다.

'무한도전'이 한때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주춤하면서 SBS '스타킹'과 토요일 저녁 1위 경쟁을 하고 있다.

일요일 오락프로그램들도 정상을 고수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도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지만 최근 힘이 빠졌다.

드라마든 오락프로그램이든 조금 재미가 떨어진다고 판단하면 요즘 시청자는 케이블TV로 채널을 돌리거나 인터넷 등 다른 소일거리를 찾는다.

SBS 드라마국 허웅 CP는 "일선에서는 예전부터 전작의 후광에 크게 기댈 바가 없다고 봤지만 최근 시청자의 이동이 더욱 급격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결국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고 시청자 기호에 맞는 콘텐츠를 제대로 만들어 공급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SBS 심상대 편성기획팀장은 "젊은 층이 문화 트렌드를 선도하면서 사이클이 더욱 빨라지는 것 같다"며 "인터넷 중심 세대들의 성향이 TV 시청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최근 시청자 변동 추이를 보면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doub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