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상영가 등급 논란 '숏버스' 12일 개봉

'그라운드 제로'(9.11테러로 폐허가 된 세계무역센터 자리)가 내려다보이는 한 고층 건물. 가죽 속옷 차림의 여성 세브린(린지 비미시)이 침대 위에 엎드린 한 남성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가죽 채찍을 내리치고 있다.

같은 뉴욕의 또 다른 곳에서는 성 치료사 소피아(숙인 리)와 남편 롭(라파엘 바커)이 섹스에 열중하고 있다.

두 사람은 온갖 체위로 서로를 탐닉하고 소피아의 얼굴은 오르가슴에 빠진 듯 행복해 보인다.

한편 동성애자 제임스(폴 도슨)는 캠코더로 자신을 촬영하며 집에서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

행위를 끝내고 나서 눈물을 흘리는 제임스에게 귀가한 연인 제이미(PJ 드보이)가 다가온다.

등급 논란 끝에 법정까지 갔다가 힘들게 극장에 걸리게 된 영화 '숏버스'의 첫 장면이다.

'숏버스'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음란성이 미풍양속을 해해 국민 정서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2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던 영화. 수입사의 행정소송에 법원은 '영등위가 재량권을 남용한 결정을 내렸다'며 등급결정을 뒤집는 판결을 내렸고 결국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 다시 내려졌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을 피상적으로만 본다면 인물들은 그저 섹스에 탐닉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각자 성(性)과 사랑,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세브린은 오르가슴은 쉽게 느끼지만 사실 감정적인 사랑을 경험해 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한 처지며 소피아는 직업이 성 치료사지만 남편과 헤어지기 싫어 오르가슴을 '연기'하고 있다.

제이미는 제임스와의 권태기에 힘들어하고 제임스는 자살을 앞두고 작별인사와도 같은 동영상을 만들고 있다.

성행위에 대한 전에 없는 과감한 묘사가 들어 있지만 '숏버스'는 섹스 자체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포르노와 명확히 구분된다.

물론 타인과의 교감에 대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 영화에서 섹스는 그 교감의 중요한 수단 임에는 분명하지만 등장인물들 누구도 섹스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던 인물들을 한데 모이게 한 것은 브루클린의 카페 '숏버스'다.

타인을 신경쓰지 않고 동성애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며 '변태 성교'가 허용되는 곳이다.

영화는 파격적인 성행위 묘사로 화제가 됐지만 사실 캐릭터나 설정, 줄거리는 여러 문화 장르에서 흔히 다뤄져 오던 것인 만큼 새롭지는 않다.

이 영화가 생명력을 얻는 부분은 파격성 보다는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감독의 연출력에 있다.

존 캐머런 미첼 감독은 고민이 가득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둡기 보다는 밝고 신나게 풀어나간다.

여기에 전작 '헤드윅'에서처럼 줄거리와 잘 어우러지는 좋은 음악이 곁들여져 있다.

극장 개봉 버전은 감독이 직접 모자이크 처리를 한 '아시아판'으로, 스폰지하우스 중앙ㆍ광화문ㆍ압구정을 비롯해 10~20개 스크린에서 상영된다.12일 개봉. 상영시간 102분.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