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들의 공동체 마을인 파주 헤이리.이 곳에 들어서면 일상 속에 매몰됐던 예술성이 되살아난다.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건물들로 마을 전체가 건축물 전시장 같다.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과 예술에 대한 심미안이 저절로 생겨난다. 나름의 기준으로 건물들의 아름다움을 비교해 보기도 하고 다리가 아프면 주변의 갤러리로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헤이리는 문화예술의 생산,전시,판매,거주가 함께하는 통합적인 개념의 특수 공간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 없이 순수한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만들었다. 갤러리부터 체험전시 공간,극장 등이 줄지어 있어 가족뿐만 아니라 연인,친구끼리 와도 놀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체험전시 공간인 '딸기가 좋아',음악감상실 '카메레타' 등이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졌고 즐길거리도 풍성하지만 홈페이지(http://heyri.net)를 통해 미리 전시와 행사 일정을 파악하고 가면 더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 '딸기가 좋아'

'딸기가 좋아'는 의류 · 캐릭터 전문회사인 쌈지의 캐릭터 브랜드 '딸기'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다. '딸기가 좋아''집에 안 갈래''쌈지아트콜렉션'의 3구역으로 나뉜 공간에 어린이들의 놀이 · 체험 · 문화 · 교육 시설이 가득 담겨 있다. 아이들이 관련 캐릭터 상품을 조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온 가족이 함께 놀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집에 안 갈래' 구역의 '숲이 좋아,바다가 좋아'는 취학 전 아동들이 뛰어 놀기 좋은 곳이다. 헤이리에서 가족 단위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이기도 하다. 숲과 바다를 테마로 한 놀이터와 도서관의 복합시설인 이 곳에선 땀이 나도록 뛰놀다가 피곤해지면 바닥에 누워 부모님과 오순도순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다.

'20세기 소년소녀관'은 부모와 자녀의 공감대 형성에 좋은 공간이다. 1970~80년대 서점과 문방구를 재현한 거리인 이 곳은 10원짜리 종이 인형부터 '소년중앙''소녀시대' 등 당시 청소년들에게 최고 인기였던 잡지들까지 다양한 추억 거리를 제공한다.

'딸기가 좋아' 구역은 다양한 캐릭터로 꾸며진 놀이터와 포토 존.동화책과 기발한 딸기 출판물을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가장 인기 있는 코너는 똥을 형상화한 캐릭터 '똥치미'의 공간.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똥을 부여안고 있는 '완소똥'(완전 소중한 똥) 캐릭터가 배꼽을 잡게 한다.

하이라이트는 사람의 대장 속을 형상화한 똥치미의 방이다. 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똥치미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이곳을 지나 보면 아이들은 역시 '똥''방귀' 등을 소재로 한 모든 것에 열광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각 공간 및 프로그램별로 1인 3000~1만5000원.매주 월요일은 문을 닫고 매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연다. (031)957-0636


■ 옛 기억의 흔적들

헤이리에는 진정한 빈티지(오래돼 더욱 가치를 더하는 물건)의 공간들이 많다. 카메레타 음악감상실이 대표적이다. 7번 출구 근처의 묵직한 콘크리트 건물.아나운서 황인용씨가 운영하는 음악 감상실로 유명하다. 1만여 장의 LP가 모여 있는 이곳에서 황씨는 신청곡을 틀어 주거나 직접 선곡해 카페를 찾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 준다.

화장실의 남녀 구별 표시도 남자와 여자가 각기 그려져 있는 LP판의 그림을 이용하고 앙증맞은 연필깎이와 몽당 연필이 놓인 테이블은 아날로그를 향한 사람들의 향수를 풀어 준다. 카메레타의 전면 벽은 거대한 스피커 두 개로 채워져 있는데 이것도 1930년대 무성영화 시대에 미국 극장에서 사용하던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빈티지 제품이다. 이 스피커를 보기 위해 일부러 카메레타를 찾는 이도 많다. 건물 자체도 매력적이다. 건축가 조병수씨의 작품으로 심플하면서도 절제된 디테일이 세련됐다. (031)957-3369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은 헤이리 7번 게이트로 들어와 사거리를 지난 후 왼편에 보인다. 사업가인 박물관장이 자기 돈으로 사 모은 70여개 국의 악기 500여 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미리 신청하면 악기 연주 방법도 배울 수 있다. (031)946-9838

씨네팰리스는 영화 박물관이다. 3번 출입구로 들어와 사거리에서 좌회전,그리고 우회전하면 왼쪽에 보인다. 어른들에게 동심을 되돌려 주는 세계 명작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031)957-7763

■숨은 공간들

헤이리에는 숨어 있는 명소도 많다. 많은 방문객들이 입구의 레스토랑이나 엔터테인먼트 시설에 집중하느라 찾아내지 못할 뿐이지 카페 뒷마당이나 갤러리 사이 사이엔 겨울 내음을 맡으며 한적하게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이는 헤이리의 모든 상업시설이 20%의 문화 공간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내부 규정 덕분이기도 하다. 한향림갤러리 뒤편의 오솔길은 헤이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아기자기한 정원의 모습까지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031)948-1001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