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이 없는 연말 극장가에 '슬리퍼 히트'를 기록하는 영화들이 잇따르고 있다.

'슬리퍼 히트'는 개봉 초기에는 흥행을 못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입소문을 타면서 관객들이 꾸준히 몰리는 작품을 말한다.

첫 주말 관객 수로 전체 흥행 성적까지 점쳐온 충무로의 관행이 무색해지고 있는 것.

9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김윤진 주연의 '세븐 데이즈'는 11월26일∼12월2일 전국 47만7878명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14일 개봉돼 첫주 박스 오피스 3위로 시작했지만 2,3주차에 1위로 뛰어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누적 관객 수는 135만944명.월드스타 김윤진의 호연과 영화를 본 사람들에 의해 '괜찮다'는 입소문이 퍼진 게 주효했다.

이안 감독의 '색,계'는 같은 기간 34만3821명을 동원하며 누적 관객 수가 141만3282명에 달했다.

지난 8일 개봉 직후엔 관객이 몰리지 않았으나 파격적인 정사 장면과 작품성이 화제가 되면서 중·장년층과 주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스크린 수도 개봉 당시 218개에서 300개 가까이로 늘어나 장기 흥행이 점쳐진다.

지난 9월20일 선보인 '원스'는 음악영화 바람을 일으키며 누적관객 수 18만명을 넘어섰다.

대학로 하이퍼텍나다 등 단 10개관에서 시작한 독립영화의 이같은 흥행은 일반 상업영화 기준으로 보면 관객 500만명 이상을 동원한 것 같은 '대박'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슬리퍼 히트'작이 늘어나는 것은 국내 영화시장도 관객들이 수준높은 작품들을 소화할 만큼 성숙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색,계'는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작이며 '원스' 역시 선댄스영화제와 더블린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품성이 뛰어난 국제영화제 수상작이 국내에서 100만 관객을 넘긴 것은 '색,계'가 처음이다.

영화업계 관계자는 "많은 영화관을 확보한 후 '물량 공세'로 흥행몰이에 나서는 블록버스터들도 요즘에는 입소문을 타지 못하면 흥행에 실패한다"며 "영화 비수기인 초겨울인 데도 작품성 있는 영화 3~4편이 장기흥행 체제에 돌입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