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윌리스가 '다이하드' 시리즈를 끝낸지도 어언 10년이 흘렀다. 좀이 쑤실만도 했을 것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그는 부지런히 액션 블록버스터에 출연해왔다. 하지만 진정한 영웅이 되지는 못했다. 혹은 인상적인 영웅이라고나 할까. 그런 영웅에 대한 갈증. 윌리스는 '호스티지'를 통해 그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호스티지'는 제목이 노출하듯 인질과 그 인질을 구출하는 경찰의 이야기다.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최상의 조건. 윌리스가 동명의 소설을 보자마자 영화화 욕심을 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따지자면 이 영화는 스케일과 스릴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제프 탤리(브루스 윌리스 분)는 LA 경찰국 소속 최고의 인질범 협상가. 그러나 지독한 자만감에 인질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 이후 그는 시골마을 경찰서장이 돼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이 조용한 마을에 생각지도 않은 인질 사건이 발생한다. 대저택에 갇힌 세명의 인질과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세명의 범인. 이제는 더 이상 니고시에이터가 아닌 탤리는 연방경찰이 맡은 사건을 측면에서 지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그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괴한들이 돌연 탤리의 아내와 딸을 납치해간다. 괴한들의 요구사항은 인질범들이 장악한 대저택에 침투, 자신들이 찾는 물건을 빼내오라는 것. 탤리는 인질범은 물론 동료 수사관들마저 따돌려야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진다. 윌리스는 '다이하드'의 영광에 '식스센스'의 울림을 양손에 쥐고 싶어했다. 곳곳에서 돈 냄새가 묻어나는 난공불락 요새 같은 호화로운 대저택을 통해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니고시에이터와 가장으로서의 인간적인 고뇌를 진하게 표현하려 했다. 영화 속 인질 사건의 이중구조는 그런 점에서 대단히 효과적인 장치. 실제로 치밀하게 설계된 부잣집은 인질 중 한명인 8살 꼬마가 악당을 상대로 펼치는 컴퓨터 게임 같은 무대가 되준다. 휴대 전화를 통해 탤리의 지시를 받으며 마치 생쥐처럼 집안 곳곳을 누비는 꼬마의 모습은 맥컬리 컬킨의 '나홀로 집에'가 준 재미를 이어간다. 인질범들의 눈을 피해 교묘하고 조용히 집안 곳곳을 쏘다니는 꼬마의 모습은 만만치 않은 긴장감과 흥미를 안겨준다. 또 인질범과 심리전을 펼쳐야하는 와중에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되면서 극도의 혼란을 경험하는 탤리의 모습은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배수의 진을 친 상태에서 범인과 협상을 하고 물건을 빼내와야 하는 탤리의 상황이 국가와 세계를 구해야하는 여타 할리우드 영웅들보다 인간적인 것은 사실. 여기에 원없이 터져주고 쏴주는 액션 장면이 기본으로 깔려있으니 영화는 모든조건을 고루 갖춘 셈이다. 그러나 이제 50대에 접어든 윌리스는 말이(혹은 생각이) 많아졌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잉'의 혐의가 짙다.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느낌이다. 특히 인질범 중 한명이 점차 광기어린 살인마로 변하는 것은 입안에 고여있던 침을 마르게 한다. 또 FBI까지 사칭할 정도로 기가찬 괴한들의 '짓거리'도 다소 생뚱맞다. 상황과 감정이 넘쳐나니 나중에는 오히려 긴장감이 떨어진다. '다이하드'의 명쾌한 맛이 그리워지는 것은 그 때문. 잘 마른 빨래 같아야할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물기가 느껴지니 섭섭해진다. 미국과 일주일 차로 개봉하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