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풀코스 만찬과도 같다. 새로운 세계를 접한 한 인물의 내면적 변화 과정을 그린 서사물이면서 그 속에 액션과 드라마 사랑,철학이 고루 담겨 있다." 톰 크루즈는 신작 "라스트 사무라이"의 성격을 이렇게 정의했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이 작품에서 그는 1백여년전 개화기 일본을 배경으로 사무라이(무사)의 세계에 서서히 동화되는 미국의 퇴역장교역을 맡았다. 그가 무사로 변화하는 과정은 지난 90년작 "늑대와 춤을"에서 인디언 부족과 우정을 나누다가 인디언 전사가 되는 미군병사역의 케빈 코스트너와 비슷하다. '늑대와 춤을'이 인디언의 문화에 가치를 부여하고 백인의 야만성을 들춰냈듯,'라스트 사무라이'는 무사로 대변되는 구(舊)문화를 재평가함으로써 미국의 근대문명이 잃어버린 충성과 헌신 희생 등의 덕목들을 반추하고 있다. 메이지왕의 요청을 받고 신식 군대를 조련하기 위해 일본에 온 알그렌 대위(톰 크루즈)는 구식군대인 무사계급의 지도자 가쓰모토(겐 와타나베)와 전장에서 만난다. 이후 카메라는 알그렌의 눈을 통해 칼이 상징하는 무사도와 총이 대변하는 서구의 물질문명을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무사도는 헌신과 희생 충절을 상징하지만 서구문물은 이기심과 결탁한 타락으로 나타난다. 가쓰모토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우국충정의 화신인데 반해 그의 정적 우조는 신문물 도입과정에서 축재한 파렴치한에 불과하다. 알그렌이 총을 버리고 칼을 택하거나,할복한 가쓰모토에게 신식군인들이 무릎을 꿇는 장면은 물질문명에 비해 무사도가 도덕적으로 우월함을 보여주고 있다. 무사도는 죽음의 미학과 아름다운 장식물을 결합시킨 모습으로 표현된다. 할복이라는 죽음의 형식이나 화려한 갑옷으로 치장한 외관은 타인들로부터 자기 희생을 인정받고픈 명예심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최후의 전투에 참가하는 알그렌에게 무사계급의 여인이 갑옷을 입혀주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알그렌이 희생을 각오한 대가로 무사로 인정받음과 동시에 그녀의 죽은 남편을 대신할 사랑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무사도에 대한 찬미 일변도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본에서 자행됐던 무자비한 살육,이웃 조선을 겨냥했던 정한론(征韓論) 등도 무사도의 한 양상이기 때문이다. 내년1월 9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