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들이 만들어지는 회사(사이버다인)가 폭파됐는데 어떻게 반란이 일어난다는 말이지?', '아놀드가 액션연기하기에는 너무 나이든 것 아닌가?', '감독이 제임스 카메룬이 아니네…', '그런데 10대 후반이나 20대초반의 요즘 애들이 이 영화를 기억할까?' '터미네이터 3'를 12년간 기다려온 관객들에게 이같은 의문이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같다. 제2편에서 존 코너(에드워드 펄롱)과 어머니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는 기계들의 본산지 사이버다인을 파괴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T-101(아놀드 슈워제네거)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장렬하게 용광로로 들어간 이유도 '반란하는 기계'들이 생겨날싹을 애초에 없애버리기 위한 것. 제3편은 '단지 반란이 늦춰졌을 뿐'이라는 애매한대사로 이 고비를 넘긴다. 물론, 즐겨보자는 상업영화에서 이 정도 옥의 티는 눈감아 줄 수 있다. 사실 1편에서 존 코너의 아버지가 된 사람도 미래에서 온 사람이니 너무 많이 생각하면 골치만 아파질 수도 있을 것같다. 쉰여섯 번째 생일을 보름 남짓 남겨둔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나이도 그다지 걱정할 일은 아니다. 현재로 등장하는 특유의 포즈에서 얼핏 목격되는 뱃살을 제외하고는 나이가 '무리'라고는 느껴질 장면은 많지 않다. 눈가의 주름 수를 세느라 영화를즐길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기우일 뿐. 사실 할머니, 어머니, 딸 등 삼대의 사랑을함께 받으며 고희(古稀)를 넘기고 희수(喜壽)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액션배우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숀 코너리 같은 배우도 있지 않은가. 오는 25일 개봉하는 영화 '터미네이터 3'는 분명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이고 즐길 만한 블록버스터 영화다. 차량이나 전봇대, 심지어는 건물 전체를 무너뜨리는 액션은 입이 쩍 벌어지게 할 정도로 가관이며 쫓고 쫓기는 추격장면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할 만큼 볼만하다. 터미네이터가 처음 와서 입을 옷을 찾아 가는 곳에서는 남성 스트리퍼가 춤을 추고 있다. 선글라스에 집착하다가 별 모양의 우수꽝스러운 선글라스를 쓴다거나 피해도 될 만하지만 굳이 이빨로 총알을 막아내는 터미네이터의 모습은 전편보다 유머가 풍부해진 듯하다. 주인공들이 무뚝뚝한 터미네이터와 나누는 대사도 한결 재치있어 보인다. '부랑자가 된 존 코너가 지구를 구한다'는 설정도 환호를 받을 만한 편. 'I am back', 'She will be back' 등 'be back'을 연발하는 것도 12년을 기다려온 팬들에대한 서비스인 듯 반갑다. 불안했던 감독은 알고보면 이미 'U-571'와 '브레이크 다운'으로 검증받은 조나단 모스토우. 게다가 여자 터미네이터 T-X의 등장으로 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이미 터미네트릭스의 조정을 받게 된 T-800이 자신의 말처럼 '기계일 뿐'임에도 자신을 마인드컨트롤해 주인공을 구한다든가 컴퓨터인 T-X가 영화팬들을 의식한 듯 사자의 포효를 내는 것은 원래 이 계통의 영화가 그런 식이라고 치면 별다른 시빗거리는 안 될 듯하다. 하지만, '터미네이터3'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계 문명에 대한 비판을 곁들인 전편들에 비해 한층 깊이가 얇아진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왜 미국인들만 지구 평화를 위해 나서는지도 부담스럽고 어차피 로봇인데 왜 이다지도 다들 근육질이어야 하는가도 '지구 수호자'를 그리는 평범한 남녀 입장에서 불만거리다. 이미 미래가 결정돼 있다는 게 기본 설정인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로 기계가 지배하는 사회의 디스토피아를 발견해 내리라는 기대도 부질없어 보인다. 사실, '터미네이터'에서 상업영화 이상의 가치를 바라는 것은 당최 쓸데없는 기대가 아니었나 싶다. 최첨단의 촬영 장비와 그래픽 기술을 이용하고 2억 달러(약 2천400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은 이 영화가 '기계 문명에 대한 공포'를 경고한다는것은 어차피 앞뒤가 맞지 않아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