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액션드라마 '헐크'가 지난 4일 개봉됐다. '와호장룡'의 이안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1970년대 국내에 선보였던 TV 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와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 TV 시리즈의 근육질 '인간' 헐크에 비해 훨씬 크고 강력한 괴물 헐크가 특수효과로 창조됐다. 또 주인공은 은폐된 장소가 아닌 공개된 장소에서 헐크로 변신한다. 이로써 헐크는 타인의 공격을 자주 받고 이에 강력하게 반발함으로써 풍성한 액션을 낳는다. '헐크'는 '스파이더 맨'과 '배트 맨'처럼 만화를 원작으로 탄생한 초인 중 가장 독특한 캐릭터다. 그는 초강력 파워로 악당을 퇴치하지만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을 응징한다. 분노로 생겨난 파워는 축복이 아닌 저주이며 원치 않는 능력을 보유한 인간의 고뇌이자 갈등의 표상이다. 화가 나면 녹색 괴물로 변하는 과학자 브루스 배너(에릭 바나)는 아버지 데이비드(닉 놀테)의 과욕,돈에 집착하는 과학자들의 흉계로 끊임없이 고통받는다. 배너를 사랑하는 연인이자 동료인 베티 로스(제니퍼 코널리)도 아버지 로스 장군(샘 엘리엇)의 욕망 탓에 갈등을 빚는다. 두 연인과 아버지들과의 관계는 적대감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과학이 인간과 불화하고 있는 현실을 상징한다. 과학자의 실수로 태어난 헐크는 생명의 신비를 훼손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형상화했던 '프랑켄슈타인'과 흡사하다. '헐크'에는 괴물에 관한 고전영화들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헐크가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는 장면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를 참고했고 헐크가 베티를 손으로 감싸 들어 올리는 모습은 '킹콩'에서 따왔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마뉴먼트밸리 등 미국 명승지들을 배경으로 헐크가 군대와 싸우는 장면들도 고전적 괴물영화들의 맥을 잇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화면분할 전략이 돋보인다. 동시발생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방편으로 쓰여왔던 화면분할이 여기서는 스토리를 신속하게 전개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고도의 컴퓨터그래픽으로 헐크가 너무 매끄럽게 움직이기 때문에 '기괴함'이 사라져 버렸다. 전체 관람가.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