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사무실에 덜렁 하나 남아있는 책상. 멍하게 정면을 응시하며 한숨을 쉬고 있는 남자. 비까지 내리는 오늘은 이 남자의 정년퇴직 기념식이 있는 날이다. '가족의 사랑을 받고 이웃의 존경을 받으며 진실한 우정을 나눴으며 자신이 일하는 보험사를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았다'는 칭찬이 들려오지만 남자는 그저 내일부터 회사에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을 뿐이다. 다음달 7일 개봉하는 「어바웃 슈미트」는 잭 니콜슨의 열연이 단연 돋보이는 영화. 자신의 표정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에 관객들의 탄성과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있을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이보다 더 좋을 순없다」, 「이지 라이더」 등의 영화를 통해 이미 연기 잘하는 배우로 충분히 알려져있지만 이 영화에서 잭 니콜슨은 화면 전체를 장악하는 섬세한 연기를 소름끼칠 정도의 연기로 펼쳐내고 있다. 잭 니콜슨은 이 영화로 이미 LA 비평가 협회와 골드글러브의 남우주연상을 차지했고 다음달 열리는 아카데미에도 후보로 올라 있는 상태. 영화는 회사에서 퇴직한 한 남자가 부인까지 잃은 후 느끼는 상실감과 고독을 그리고 있다. 곳곳에 유머와 위트가 묻어 있고 어조는 우울하기보다는 유쾌하지만 주인공이 맞닥뜨린 상황은 지독하게도 비극적이다. 퇴직 후 첫날을 타블로이드 신문 낱말맞추기로 시작한 슈미트(잭 니콜슨). 소파에 누워 채널 바꿔가며 TV를 보는 일밖에 할 일이 없다. 생각해보면 그의 주변에는 온통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다. 마마보이에 대머리인 사윗감도 싫고 대화 도중말이나 끊고 새로 생긴 레스토랑 가자고 졸라대기에 바쁜 부인도 지긋지긋하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것은 멀리 떨어져 살지만 능력있고 예쁜 딸 지니 뿐. 빈둥대던 그는 어제까지 출근했던 자신의 사무실에 들른다. 후임자는 풋내기지만 '모든 일을 컴퓨터를 통해 해결하는 것을 모토로 한다'는 일류대 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자신이 벌여놓은 온갖 복잡한 작업들을 돕겠다'고 말하는 슈미트에게 돌아오는 것은 곤란한 표정에 '운동이라도 좀 하세요'정도의 말. 지루해진 그는 우연히 TV광고를 통해 아프리카 불우아동 후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하루에 77센트씩을 송금하며 돕게 되는 아이는 탄자니아에 사는 여섯 살 남자아이. 슈미트는 가끔 쓰는 편지를 통해 아이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린다. 그러던 어느날 외출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갑작스럽게 죽어있는 아내를 발견하게 된다. 겉으로는 아무리 태연한 척 해도 혼자 사는 외로움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에 힘들어 하는 슈미트.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집에서 아내의 향수 냄새나 맡으며 살아가던 그는 같이 살자는 자신의 제안을 딸 지니가 거절하자 트레일러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일렉션」의 알렉산더 페인이 메가폰을 잡았고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카메론 디아즈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던 더모트 멀로니와 「미저리」의 캐시 베이츠가 각각 사위와 사위의 어머니로 '변신'한다. 12세 관람가. 상영시간 120분.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