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인사들의 애장품이 한 자리에 나온다. 가나아트갤러리가 10일부터 2월 2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마련하는 '나의 애장품'전에는 명사 50여명의 소장품 120여점이 출품돼 관람객과 만난다. 어떤 이유에서든 소장자가 애장품을 대중 앞에 내놓기를 꺼리는 것이 보통이다.특히 소장자 이름을 공개한 경우는 더더욱 보기 힘들어 이번 전시가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출품작은 값이 비싸거나 예술성이 뛰어나서 선정된 게 아니다. 소박하더라도 소장자의 따뜻한 애정이 담겨 색다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 중심으로 전시장을 꾸민다.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 관장은 길이 8cm의 호랑이 어금니를 내놓고, 이어령 전문화부장관은 백남준의 스케치 다섯 점을 출품한다. 유현목 영화감독은 말안장을 소개하며, 이성낙 아주대 부총장은 아프리카에서 구해온 이색 조각품을 선보인다. 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성자의 판화 등을, 김종재 서울의대 교수는 선친의 스케치 작품을 전시하고, 김창실 선갤러리 대표는 조선시대 목조 혼천의 등을 내놓는다. 이 작품들은 소장자의 애장기(愛藏記)와 나란히 전시돼 눈길을 끌게 된다. 소장자가 애장품에 대해 애정과 소견을 글로 표현한 경우가 아주 드물어 이들 애장기는더욱 돋보인다. 김종재 교수는 선친(김원룡 박사)이 타계하기 전에 그린 '북한산 줄기'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 스케치는 김 박사가 1993년 11월 서울대병원 병실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며 그린 것. 김 교수는 작품에서 날로 수척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서기원 KBS 전사장의 '조선백자철회 자연무늬병'에도 특이한 사연이 담겼다. 30여년 전 인사동에서 구입한 뒤 이름을 '제 멋대로' 붙인 것. 잘못돼 버려진 술병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그에게 늘 따뜻한 위안이 됐다. 서씨는 "이 병에서 작은 충격을 받지 않는다면 감수성에 다소 이상이 있는 사람"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허동화 관장의 애장기도 재미있다. 그는 호랑이의 어느 부분이든 소유하면 액을물리치는 효과가 있다는 민담을 믿고 그 어금니를 구했다. 남과 다툴 일이 있을 때면 호주머니에 이 어금니를 숨기고다니며 효력을 기대하곤 했다는 것. 하지만 한번도 덕을 본 적이 없다고 하씨는 귀띔한다. 의사인 이성낙 부총장은 '약탕기를 든 아프리카 조각'을 코트디부아르의 한 가게에서 만났다. 작품의 노인은 두 손으로 약탕기를 들었으나 맛이 써서인지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센씨병에 걸려 몸은 반점으로 가득했다. 그래선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더라는 것. 이씨는 이 만남을 특별한 인연으로 여긴다. 갤러리측은 "고가의 귀중품만이 아니라 소박한 사물도 소중히 애장하는 명망가들과 함께 건전한 애장문화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전시회를 기획했다"면서 "전시는예술작품에 국한하지 않으며 일반인들이 보면서 즐기고 공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설명한다. ☎ 3217-0233.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