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억압으로 파멸에 이르는 개인을 그린 독일 사실주의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의 「보이체크」가 내년 1월 14일-2월 2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 오른다. 외국 연출가와 국내 배우들이 함께 만드는 이례적인 형태의 공연이다. 예술의전당이 '연극의 부활'을 염두에 두고 처음으로 해외 공동제작에 발벗고 나섰다. 스태프와 캐스팅이 화려하다. 연출자는 러시아의 차세대 연출가로 꼽히는 유리부드소프(42). 「고도를 기다리며」를 각색해 황금마스크상 최고 연출가상을 타는 등 최근 러시아 연극계가 주목하는 인물이다. 또 지난해 영화 「나비」로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청동표범상을 거머쥐며 스타덤에 오른 유호정을 비롯, 장민호 윤주상 한명구 박지일 남명렬 장현성 등 연극계의 '스타'들이 대거 참여한다. 원작자 뷔히너는 평소 품행이 나빴던 정부(情婦)를 일곱 번이나 칼로 찔러 죽인이발사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주인공은 가난한 병사 보이체크. 정부 마리와 아이를 부양하려 하지만 돈이 없다. 돈을 벌기 위해 그는 한 의사의 실험대상으로 자신의 몸을 제공한다. 그 와중에 정부 마리는 군악대장의 유혹에 넘어간다. 절망에 빠진 보이체크를 중대장과 군악대장, 의사 모두가 조롱할 때 그를 찾아오는 살인충동. 결국 보이체크는 이성을 잃은 채 마리를 죽이고는 자신 역시 연못에 빠져 죽고만다. 이 작품은 미완성인 데다 대사의 상징성이 강해 빈번한 재해석을 낳아왔다. 이 때문에 연극 뿐 아니라 오페라, 무용, 마임 등 다른 장르로도 숱하게 공연됐다. 부드소프는 '가난과 불평등한 계급이 낳은 억압과 소외'라는 유물론적 해석 대신 '인간성 상실의 문제'에 주목한다. 부드소프는 "세상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얘기다. 가난하고 가련한 사람들의 내적 심성에 관한 얘기이면서 동시에 철학적인 얘기다. 원작은 억압-피지배로 나뉜 사회구조에 초점을 뒀지만 나는 인간적인 면모를 바라보려 애썼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양식면에서 종래 한국 연극과는 다를 것이란 기대를 품게 한다. "과거의 연극은 작가의 연극으로 대사가 중요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연출가의 연극이 되면서 새 언어가 필요해졌다. '신체 언어'나 '신체 메타포'는 그런 모색 결과 찾은 새 언어다. 현대는 신체연극의 시대다"라는 게 부드소프의 '현대연극관'이다. 대사나 표정이 아닌 '몸'의 연극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함께 작업하는 배우들 얘기도 같은 맥락에 있다. 박지일은 "말 그대로 안무가가(우리를)'반 죽인다'. 원망도 많이 한다. 신체 훈련에 많은 비중이 할애돼 있는데 아직 몸이 마음을 못 따라간다. 연습을 이렇게 많이 하기는 처음이다. 그러나 좋은 수업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한다. 무대도 독특하다. 간결하고 상징적이지만 바닥 전체를 30도쯤 앞으로 기울였다.이 위를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배우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다. 부드소프는 97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렌소베타 극장의 초빙으로 「보이체크」를 연출, 초연했다. 이후 이 극장 레퍼토리가 된 이 작품은 황금소피트상을 타기도 했다. 그러나 부드소프는 이번 한국 공연이 렌소베타 극장 버전의 재판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 그는 "기본 컨셉트는 똑같지만 전혀 다른 상황과 배우로 준비하는 만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시간 화-금요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4시.7시 30분, 일요일 오후 4시. 2만-3만원. ☎ 580-1300, 780-6400.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