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의 현대적 변주인가, 「매트릭스」의 충무로판 버전인가. 아니면 장자(壯子)와 금강경(金剛經)의 장선우식 설법인가? 13일 선을 보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제작 기획시대)은 눈으로 보면 유쾌한 한판 게임이고, 머리로 보면 고승들의 선(禪)문답 같다. 그러나 가슴으로 보면 잘 와닿지 않는다. 영화의 타이틀 화면은 이 작품 전체의 줄거리를 은유하는 한편 장선우 감독의 의중을 함축하고 있다. `목포의 눈물'이 이난영의 간드러진 목소리에 실려 흐르는 가운데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가냘픈 몸매의 소녀가 일회용 라이터를 사줄 것을 호소한다. 거듭된외면과 냉대에 지친 소녀는 따뜻한 꿈을 꾸며 얼어죽는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와 달리 라이터의 부탄가스에 취해 행복하게 숨을 거둔다. 중국집 배달원 주(김현성)는 게임에 미쳐 살면서 게임방 아르바이트생 희미(임은경)에도 빠져 있다. 어느 늦은 밤 희미를 닮은 소녀로부터 라이터를 산 주는 무심코 라이터에 새겨진 번호로 전화를 걸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접속하시겠습니까?"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게임의 목적은 성냥팔이 소녀를 납치나 살해 기도로부터 구해낸 뒤 행복한 죽음을 맞게 해야 한다는 것. 희미의 싸늘한 태도에 질려 말 한번 제대로 붙여보지 못하던 주는 게임 속에서나마 사랑을 나눠보기 위해 접속을 시도한다. 그러나 가상현실에서는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 기다리고 있다. 5인조 양아치는희미의 몸을 탐하고 조직폭력배 비련파는 그를 납치해 이용하려 한다. 트렌스젠더전사 라라(진싱)가 오토바이를 탄 채 허공을 누비며 이들과 맞대결을 벌이지만 쉽게승부가 나지 않는다. 게임은 점차 `레벨 업'되면서 액션의 강도와 긴장감을 높여간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난투극과 총격전을 지켜보던 주도 기관총을 신나게 갈겨댄다. 그러나 문제는주가 시스템의 규칙을 어기고 희미와의 완전한 사랑을 이루려는 것. 이를 눈치챈 시스템 운영자들은 주를 바이러스로 간주해 제거에 나선다. `선지자'와 `잡놈' 사이를 방황하는 듯하던 장선우 감독의 괴팍하고 신선한 발상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이르러 무애(無碍)의 경지에 이른 느낌을 준다. 장자가 나비가 됐다가 나비가 장자가 되는 호접몽(胡蝶夢)의 고사에서부터 분별심을 떨치는 것이 본성을 깨치는 것이라는 금강경의 법문,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만들어낸다는 카오스 이론, 그리고 성경의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주유하며 동서양 고전의 상징과 첨단 게임의 코드를 교묘하게 교직시켰다.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상황을 얼마든지 만들어내는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영화의줄거리를 중층적으로 만든 것도 장선우식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특히 결말의두 가지 버전은 압권. 산과 바다, 뒷골목과 대형빌딩,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부산의 배경을 적절하게 활용한 것이라든지 탄환이 공기의 파장을 만들어내고 나비의 날개가 포말로 부서져 바다에 빠지는 등의 첨단 컴퓨터그래픽,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무용가 진싱의 액션 등도 볼 만하다. 그러나 장선우식 발상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충무로가 들인 희생은 너무 컸다.독립영화적 감성과 작업방식을 지니고 있는 감독을 산업적 시스템에 끼워맞추려는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100억원을 헤아린다는 충무로의 투자가 극장 앞의 장사진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지, 아니면 장감독의 말대로 보시(布施)한 셈치고 쓰린 속을 달래야 할지 결과를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