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도 있겠지만 대체로 기억 혹은 추억은 삶의 원동력이자 윤활유이다. 망각 기제로 자연스럽게 잊혀진 게 아니라 기억을 빼앗긴다면 삶의 한 부분을 도난당한 것과 같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남자가 사랑의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오버 더 레인보우」는 20대 청춘 남녀들을 위한 잘 빚은 소품 같은 영화다. 과거와 현재가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하며 하나의 큰 밑그림을 이루는데, 매무새가 제법 깔끔하다. 사랑찾기 퍼즐의 답안은 뻔히 드러나 있지만 그렇다고 퍼즐을 풀어가는 과정까지 진부하지는 않다. 마치 스타들의 추억 속 인물을 찾아주는 모 TV프로그램처럼, 주변 인물들에게 묻고 물어 찾아가는 과정은 험난하지만 어렵사리 주인공을 찾아냈을 때 감동은 배가 된다. 스릴도 있다. 방송국 기상캐스터인 진수(이정재). 교통 사고를 당한 뒤 정상적으로 업무에 복귀한 그에게 부분 기억상실증이라는 증세가 찾아온다. 친구의 애인이 1년 전 죽었다는 것도 잊고 "둘이 결혼 안하냐"라고 물어봤다가 친구를 당황하게 만든다. 지난 8년 간 혼자서 가슴앓이를 했던 여자가 있었다고 하는 데 그녀가 누구인지 도무지 머릿속에 상이 맺히질 않는다. '레인보우'라고 적힌 글귀와 함께 흐릿한 실루엣만 담긴 그녀의 사진이 그의 기억을 대신할 뿐이다. "선배가 짝사랑하던 여자요? 광고학과 학생이었죠." "네가 사랑하던 여자라면 그 무대 위의 여왕밖에 없지." 좋아했던 사람은 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친구들은 제각각 다른 여자를 이야기한다. 지하철 유실물센터 직원 연희(장진영). 진수의 절친한 친구인 상인(정찬)과 캠퍼스 커플이었지만 그에게서 이별을 통보받고 괴로워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 오랜만에 우연히 재회한 진수와 연희. 잊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 집착하는 진수를 위해 연희가 기꺼이 그의 기억여행에 동참하면서 둘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싹튼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기억은 되찾을 수 있지만 당시의 감정까지는 그대로 되살릴 수 없다"는 게 기억여행의 종착지다. 풋풋했던 대학시절의 모습이 피부에 와닿게 그려져 있다. 사랑 때문에 가슴않이를 했던 친구 녀석이나 동아리방에 `연애금지' 따위를 써붙여놓고 애인 없는 설움을 후배에게 군기를 잡으면서 풀었던 선배, 찍어둔 남자가 있어 관심도 없던 동아리에 들었던 여학생, MT에서의 즐거운 추억까지. 20대 후반 젊은이들에게는 그다지 먼 이야기가 아니다. 기상캐스터인 이정재가 `과거를 전하는 딱딱한 뉴스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기상예보는 달라야 한다'며 영화「사랑은 비를 타고」의 진 캘리처럼 빗 속에서 경쾌한 탭댄스를 추며 일기예보를 하는 장면 등 몇몇 관객을 위한 맛뵈기가 있다. 공포영화「소름」을 통해 단번에 충무로 유망주로 떠오른 장진영은 풋풋한 매력을 선보이며멜로에도 소질이 있음을 보여준다. 「퇴마록」의 조감독 출신인 안진우 감독의 데뷔작. (서울=연합뉴스) 조재영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