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미술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이에 대한 주장이 다양하게 제기됐으나 명쾌한 견해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평론가마다 목소리가 다른데다 같은 평론가라도 경우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것은 그 만큼 시대구분이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 삼성미술관이 기획한 '격조와 해학 : 근대의 한국미술전'(1일-5월 12일ㆍ호암갤러리)은 이런 논의에 또하나의 시각을 보탠다. 미술관은 한국에서 근대정신이 발현된 것이 실학의 대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근대미술의 연원을 19세기 중기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같은 해석에 따라 출품 작가는 추사 김정희에서 시작해 오원 장승업, 김환기, 박수근, 장욱진, 이중섭, 박생광, 김기창으로 이어진다. 즉, 근대개념의 시기적 하한선이 1960년대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미술관에 따르면, 이들은 근대미술의 다양한경향 속에서 소재와 기법, 색채 등에서 중국, 일본 등 이웃 나라와 차별화되는 정신성을 드러냈다. 이번 전시의 기획취지는 한국적 정신성와 미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작가의 작품으로 근대미술의 연속성을 살피자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전시방향을 '격조' '창의''해학' 등 세 가지 주제로 나눠 민족정서에 내재한 특징을 하나하나 들춰냈다. '격조'의 경우 대상의 형상보다 상징성과 사의성(寫意性)에 의미를 부여한 문인화 정신에 초점을 맞춘다. 추사 김정희에 이르러 전통문화화 청조의 고증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화풍이 꽃피었다는 것. 추사가 시도한 전통적 문인화의 새로운 해석은 조희룡, 이하응, 민영익으로 맥을 뻗치며 품격과 개성을 간직해왔다. 이는 다시 김환기, 서세옥, 유영국, 김종영 등의 작품에서 현대적으로 변용된다는 것이다. 전통 문인화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세련되고 감각적인 정취로 당시의 사회상을 신선하게 담아낸 작가들은 역관과 의관 중심의 중인들이었다. 주제 '창의'는 김수철, 홍세섭, 장승업의 작품에서 뿌리를 확인한다. 전통에 근간을 두되 개성 넘치는 구도와 표현으로 자연과 인물을 창의적으로 해석한 뒤 독자적 틀을 갖췄다는 것. 이런 경향은 이상범, 변관식, 박수근으로 계승된다. 우리 민족 특유의 해학미는 민화에서 곧잘 발견된다. 치밀하면서도 시점을 무시한 등의 민화는 박생광의 강렬한 채색화와 박래현의 벽화기법으로 이어지고, 대담한 생략과 단순미의 같은 민화는 장욱진의 천진스런 그림이나 김기창의 바보산수, 이중섭의 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호암갤러리는 '간추린 한국 근대미술사' 주제의 강연회(4월 2일.호암아트홀.강사 유홍준)와 '한국 미술 속에 나타나는 격조의 정신' 등 주제의 갤러리강좌(14일과 21일.강사 김학량 등), 초중교 미술교사 초청회(9일.이상 중앙일보사 1층 세미나실) 등의 전시 프로그램도 마련해놓고 있다. ☎ 771-2381~2.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