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회 베를린영화제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15일 낮 12시 30분(현지시간), 주상영관인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의 1천800석을 가득메운 각국 기자들은 동양의 '나쁜 남자'가 벌이는 기이한 행각을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23편의 경쟁작 가운데 20번째로 선보이는 「나쁜 남자」(제작 LJ필름)는 김기덕감독에게 메이저 국제영화제 3회 연속 진출이라는 영예와 전국관객 70만명이라는 흥행성적을 안겨준 작품.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여대생 선화의 입술을 훔쳤다가 심한 모욕을 당한 사창가 깡패 두목 한기가 복수심과 소유욕에 불타 그를 창녀로 만든 뒤 몰락을 지켜본다는 것이 기둥줄거리로 김기덕 감독 특유의 파격적인 설정과 과감한 묘사로 폭발적인 흥행과 함께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베를린에서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0년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된 「섬」처럼 한 여기자를 실신시키는 소동은 재연되지 않았지만 100분의 러닝타임이 흐르는 동안 객석 이곳저곳에서는 작은 술렁거림이 간간이 이어졌다. 특히 술취한 선화가 한기의 어깨에 토하는 장면과 한기가 전단지를 뾰족하게 접어 반대파 깡패의 목을 찌르는 대목 등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이른바 '이동식유곽'으로 개조한 트럭이 점점 작아지다가 빨간 점으로 변하며 종료자막이 화면에새겨지자 객석에서는 갈채가 터져나왔고 휘파람을 부는 기자도 있었다. 극장을 나서는 기자들은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하다"고 입을 모았으며 감독의 상상력과 배우들의 연기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여주인공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지적이나 지나친 폭력이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어 하얏트호텔에서 마련된 기자회견에서는 참석자들의 열띤 질문공세로 예정시간을 넘기는 바람에 사회자가 제지에 나서야 했다. 질문은 남자 주인공의 대사가 없는 까닭에서부터 폭력과 사랑의 연관관계, 여주인공이 창녀로 추락하게 된 경위, 흥행 부진을 면치 못하던 김기덕 감독 영화가 갑자기 대중들의 인기를 끄는 이유, 남녀 주인공의 연기 준비과정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쏟아져나왔다. 김기덕 감독은 "이 영화는 폭력이나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가 아니라 운명적인삶을 다룬 것"이라면서 "우리 사회에 우발적이면서도 이해못할 관계들이 다양하게존재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나쁜 남자」는 이날 저녁 7시 30분 같은 장소에서 열릴 공식 시사회와 16일 3차례의 일반 시사회를 가진 뒤 17일 저녁 폐막식에서 수상작으로 호명될 순간을 기다리게 된다. (베를린=연합뉴스) 이희용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