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문화계의 가장 큰 이슈는 한국영화의 엄청난 흥행몰이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조폭영화'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친구'의 전국 8백20만 관객동원과 함께 유행처럼 번진 조폭영화 열풍은 '조폭 마누라' '두사부일체' 등의 흥행 성공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을 46%까지 끌어 올리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작품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최근 작품성을 인정받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꽤 많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 '조폭'을 다룬 또 한편의 영화 '파이란'이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세 작품과는 달리 이 영화는 폭력의 미화가 없고 인신공격을 통한 질 낮은 코미디와도 거리가 먼 매우 현실적인 깡패영화다. 불법 성인 비디오를 미성년자들에게 대여하다가 감방에서 구류를 살고 오락실 주인에게 동전이나 뜯어내며 인형 뽑기 게임에 눈빛을 밝히는 3류 깡패 강재. 그리고 연변에서 건너온 순수한 처녀 파이란. 그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어둡고 강퍅한 현실에 가차없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의 환타지에 집착하는 일련의 영화들에 펀치를 먹이면서 사회의 진실을 잡아내고 있다. 청룡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작품성을 인정받은 '파이란'은 DVD 또한 한국영화 타이틀중 최고 수준의 품질로 제작됐다. 원본 필름에서 직접 복사 과정을 거친 선명한 화질과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DTS(사운드 트랙의 일종) 방식으로 수록됐다. 송해성 감독과 배우 최민식을 비롯 무려 네명이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도 수록돼 있다. 또 DVD를 위하여 새롭게 촬영된 제작진 인터뷰, 두 페이지에 걸쳐 수록된 제작과정,뮤직비디오 등이 2장의 디스크에 가득 채워져 있다. 영화의 작품성과 뛰어난 DVD 품질을 동시에 갖춘 '파이란'의 DVD가 극장흥행의 실패를 딛고 DVD로 부활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백준오 (dvdprime.com 공식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