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하나의 모순이다. 한편으론 드러내고 싶은 나의 "자랑"이면서,다른 한편으론 감추고 싶은 나의 "비밀"이기도 하다. 그것은 훈장인 동시에 상처다. 로맨틱스릴러 "바닐라스카이"(카메론 크로우 감독)는 얼굴을 소재로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탐구한 영화다. 할리우드와 스페인의 대표적인 미남미녀스타 톰 크루즈와 페넬로페 크루즈가 주연을 맡아 사랑과 인생에서 얼굴의 역할을 극명하게 부각시킨다. 데이비드 에임즈(톰 크루즈)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출판사를 소유한 부호인데다 잘생긴 외모까지 갖췄다. 수려한 얼굴은 자신감을 갖게 하고 타인을 즐겁게 해줌으로써 자신의 만족감을 극대화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자기 도취다.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게 한다. 에임즈는 새연인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에게 첫 눈에 사랑을 느끼지만 섹스파트너 정도로 여겼던 여자친구 줄리아(카메론 디아즈)에게는 질투와 앙심을 불러 일으킨다. 줄리아는 차량을 타고 동반자살을 기도하고 이로써 에임즈의 얼굴은 회복불능 상태에 이른다. 부분을 통해 전체를 파악하는데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얼굴은 한 인간의 본질이자 정체성이다. 얼굴의 파괴는 정체성의 파괴이며 자아의 상실이다. 에임즈의 행동은 얼굴만큼이나 추해진다. 모든 고통은 치유되기 마련이지만 얼굴의 상처는 그렇지 않다. 거울이 있는 한,타인의 시선이 고통의 흔적을 주시하는 한,상처는 끊임없이 재발한다. 소피아가 아름답게 보일수록 에임즈의 박탈감은 깊어진다. 어느날 아침,에임즈가 거리에서 깨어나는 순간,얼굴이 말끔해졌고 소피아와의 관계도 복원된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그가 아니다. 영화의 이야기구조는 보다 복잡해 진다. 에임즈가 정신병동에서 흉한 몰골을 가면으로 가린 채 의사와 상담하면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 편집되며 이어진다. 에임즈의 흉한 얼굴은 그의 내면 모습이기도 하다. 그는 모든 여자를 섹스파트너쯤으로 치부했고,자기 친구의 연인을 가로채는데도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일그러진 내면은 사고로 인해 표면화됐고 그것을 통해 죄의식을 갖게 된다. 정체성 상실과 죄의식은 그를 꿈과 현실사이에서 방황하도록 이끈다. 마침내 그는 많은 것을 잃은 뒤에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톰 크루즈의 "캐릭터"로 채워진 영화다. 순수와 열정을 간직한 소피아역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에임즈를 나락으로 몰고간 줄리아도 악녀적 이미지가 부족하다. "바닐라스카이"는 스페인의 알레한드로 아베나바의 "오픈 유어 아이즈"를 할리우드판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부잣집 레스토랑 아들과 팬터마임 배우 소피아의 직업이 각각 출판사 사장과 간호 보조사로 바뀌었고 이사회의 음모가 추가됐지만 원작의 줄거리는 그대로 채용됐다. 원작에 비해 화려한 파티장과 사무실 등 세트는 더 세련됐고,베드신의 농도도 더욱 짙어졌다. 멜로적 요소도 강화됐다. 21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