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도시를 처음 찾는 사람은 거리를 메운 엄청난 자전거의 물결에 놀라게 된다.


한손으로 치맛자락을 핸들과 함께 쥔 채 페달을 밟는 아가씨들, 자전거의 몇배나 되는 높이의 짐을 실은 배달원, 넥타이를 휘날리며 출근길을 서두르는 화이트 칼라 직장인…


그러나 은륜의 홍수 속에서도 금속성 광채를 발하는 자전거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소득수준에 견주어보면 아직도 자전거가 고가품이어서 한번 사면 몇십년씩 타는데다가 새 자전거일수록 도둑의 표적이 되므로 잘 닦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제6세대 감독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왕샤오솨이(王小帥)가 중국 도시의 상징이 돼온 자전거를 영화의 화두로 삼은 것은 여러모로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는 「북경 자전거」로 올해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곰상)을 거머쥔 데 이어 전주영화제에서도 관객들의 갈채를 독차지했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17살 소년 구웨이는 자전거 퀵서비스 회사에 취직해 신제품 실버 자전거를 대여받는다.


열심히 일해 자전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돈도 모을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고 베이징 거리를 누빈다.


「씨클로」(감독 트란 안 훙)의 주인공이 모는 씨클로(자전거 앞에 좌석이 달린 인력거)처럼 자전거는 구웨이의 전재산이자 생계수단이자 장래의 희망이다.


그러나 자전거 대여비를 거의 갚았을 무렵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 벌어진다.


고급 사우나에서 의뢰인을 찾다가 나와보니 자전거가 없어진 것이다.


네오 리얼리즘영화의 효시로 꼽히는 「자전거 도둑」(감독 비토리오 데시카)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회사에서 쫓겨난 구웨이는 자전거를 찾기 위해 베이징 시내를 헤매다가 같은 또래의 고교생 지안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지안은 집에서 훔쳐낸 돈으로 중고시장에서 구웨이의 자전거를 샀던 것.


구웨이는 지안이 안보는 틈을 타 자전거를 되찾지만 지안의 친구들에게 뭇매를 맞고 도로 빼앗긴다.


여학생과 데이트를 즐기려면 멋진 자전거가 필수여서 지안 역시 구웨이 못지 않게 자전거를 향한 애착이 절실하다.


여러 차례의 실랑이 끝에 구웨이와 지안은 하루씩 자전거를 번갈아 타기로 한다.


「천국의 아이들」(감독 마지드 마지디)을 본 관객이라면 운동화를 교대로 신고 달리던 오누이가 머리 속에서 오버랩될 것이다.


베이징 청소년들에게 자전거는 `욕망으로 가는 전차'이다.


비록 서울 청소년들의 오토바이처럼 빠른 시대변화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생계와 멋진 데이트를 보장하는 수단이다.


구웨이와 지안은 개방정책의 산물인 도심의 빌딩 숲 대신 문화혁명의 유산인 뒷골목의 낡은 가옥을 누비며 베이징의 단면을 보여준다.


중국 검열당국은 베이징의 발전상에 앵글을 맞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이 영화의 국내 상영을 막고 있다.


「북경 자전거」의 가장 큰 매력은 추이린(崔林ㆍ구웨이)과 리빈(李濱ㆍ지안)의 풋풋한 마스크와 자연스런 연기.


극도로 절제된 대사 때문에 답답해할 관객도 있겠지만 유리알처럼 투명한 이들의 표정에서 속마음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결말 부분에 이르러 구웨이와 지안이 자전거를 탄 폭력배들에게 쫓기는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의 자동차 추격 신 못지 않게 박진감 넘친다.


개봉 11월 10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