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 여름 날, 한 허름한 호프집에 `운짱'(택시기사) 세 명이 모여 맥주를 들이킨다. `대학 물' 먹은 준형(조준형)은 툭하면 CNN을 들먹거리며 `배운 체'를 하는데,사회에 불만이 많은 눈치다. 남이 주문한 찌개에 달랑 공기밥 하나시켜 빌붙어 먹는 모습에서는 대가족을 거느린 가장의 어깨 위에 놓인 무거운 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학락(최학락)은 술 들어가기가 무섭게 베트남전에 참전한 외삼촌 자랑을 꺼낸다. 총각 행세를 하지만 실은 피아노를 전공하는 18살짜리 딸을 아둥바둥 홀로 키우고있다. 게 중 가장 속편한 사람은 `해곤'(김해곤)이다. 옌볜 처녀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있는 것을 빼고는 누가 뭐라해도 허허실실인 낙천가인데다 `밤일' 자랑이 유일한 낙이다. 헌데 그가 허풍떠는 줄 누구나 다 안다. 「라이방」은 평범한 이 세 명의 `운짱'에 관한 이야기다. 「남자의 향기」「게임의 법칙」등 선굵은 남성 영화를 선보여왔던 장현수 감독이 "이제는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 때"라며 그동안 자기 작품에 조ㆍ단역으로 나온 배우들과 함께 제작했다. 한 `세트'처럼 지내며 서로 외로움과 상심을 달래던 이 세 명은 어느 날 특별한`모험'에 나서게 되는데, 최상무가 이들의 돈을 빌린 뒤 야반도주한 게 계기가 됐다. 모범생처럼 살아온 준형은 거액을 떼이자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급기야 두 친구들을 꼬드겨 돈방석을 깔고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집을 털기로 한다. 하는 일마다 일이 꼬이는 지지리도 운이 없는 소시민의 일상을 따라가는데도 그속에는 보석같이 빛을 발하는 유머와 희망이 담겨있어 유쾌한 웃음을 끌어낸다. 모처럼 한번 신나게 놀아 보자고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꽃뱀'에게 된통 바가지를 쓰고 줄행랑을 친 뒤에도, 갖은 해프닝 끝에 할머니집에서 훔쳐서 나온 것이 영수증 뭉치였다는 것을 알고서도 세 사람은 껄껄 웃는다. 제목은 선글라스 브랜드인 `레이밴'의 베트남식 발음에서 따왔다고 한다. 따가운 햇볕 같은 현실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뜻한다고. 촬영에 앞서 부산의 연극 무대에서 이미 호흡을 맞춰본 탓인지 주연들의 연기호흡이 대단하다. 배우의 각 캐릭터에 맞춰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에 세 명의 개성이작품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극중 이름도 실제 배우들의 이름과 같다. 유명 배우도 없고, 10억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됐지만 지난 5월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차츰차츰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11월 3일 개봉. (서울=연합뉴스) 조재영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