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의 인기 사극「태조왕건」을 집필중인 작가 이환경씨를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SBS프로덕션과 KBS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기로 다시 한번 사극작가의 태부족 현상이 방송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SBS프로덕션은 지난 9월 "4년전 본사와 전속계약을 맺은 이환경씨가 당초 100회까지만 「태조왕건」을 쓰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계속 집필중이며, 속편격인「제국의 아침」까지 쓰기로 했다"며「태조왕건」에 대한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 제기했다. 이에 대해 KBS는 "이는 SBS프로덕션과 이환경씨와의 사적인 계약상 문제로 KBS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KBS측이 '100회만 쓰게 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는 것도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환경씨는 SBS프로덕션과의 계약 때문에 내년 3월 SBS를 통해 방송될 시대극「야인시대」의 원고를 써야하는 상황. 따라서 한 작가가 두 편의 드라마를 동시에 쓰는, 방송가에 유례가 드문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 이같은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최근 사극열풍이 몰아치며 사극 작가수요가 크게 늘어났으나 이를 감당할 만한 작가층이 엷기 때문. 현재 방송작가 가운데 연출자들로부터 사극집필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은 이환경씨를 비롯,「왕과비」,「명성황후」의 정하연씨, 「미망」,「홍국영」의 임충씨,「허준」,「상도」의 최완규씨,「여인천하」,「임꺽정」의 유동윤씨 정도가 고작이다. 최근 늘어나는 대하사극들을 감당하기에는 크게 부족한 숫자. 그러다보니 이들은 50부작 이상의 대작을 쓰고난 후에도, 다음 작품의 구상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채, 바로 다음 작품에 투입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곧 사극의 완성도 하락과 직결될 수 있다. 사극 집필은 다른 현대극과 달리 각 시대의 언어, 풍속 및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고증과 이해가 전제돼야하기 때문에 방송작가들이 쉽사리 달려들지 못한다. 또한 각 방송사 입장에서도 '사운을 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해,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능력이 보장된 작가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최근 현대극에서 신진 여성작가들이 위용을 떨치고 있는 현상과는 달리 몇몇 중진 남성작가들에게만 작품이 집중되고 있는 것. 80~90년대 신봉승씨와 임충씨가 전체 방송되는 사극의 80% 정도를 도맡아 집필해왔던 상황에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최근들어 젊은 작가사이에서 사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이강덕 상임이사는 "사극열풍과 함께 일부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사극과 시대극을 집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된다"며 "사극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장르의 하나로 자리잡은 만큼 더욱 많은 작가들이 사극 집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작가들의 움직임이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방송제작자들이 먼저 사극은 나이많은 남성 작가만이 집필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선행돼야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작가를 과감하게 기용해 신선한 변화를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 30대 작가인 최완규씨와 유동윤씨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본보기가 되고있다. 지난해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허준」의 최완규씨는「종합병원」,「애드버킷」등 현대극에서 강점을 보이던 작가였으나, 이 드라마를 통해 우리나라 사극계에 새바람을 몰고왔다. 또 최근 40%를 상회하는 시청률을 기록중인「여인천하」의 유동윤씨도 신진급임에도 지난 95년「임꺽정」을 집필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최완규씨는 "사극과 시대극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이미 실력이 검증된 몇명으로 한정돼 있다고 지레 짐작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궁중사극의 경우에는 오히려 여성작가들이 훨씬 섬세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최승현기자 vaida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