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들이 수다를 떤다? 억세게 운이 없는 네 명의 삼류 도둑(`기막힌 사내들')과 슈퍼돼지 종자를 훔치기 위해 남파된 북한 특수 공작원(`간첩 리철진') 등 이색 캐릭터를 선보여온 장진감독의 신작이다. 이번에는 한 집에 모여사는 4명의 킬러가 주인공. 팀의 리더인 신현준, 폭탄 전문가 신하균, 저격수 정재영과 막내 원빈이 그 면면인데 여태껏 영화 속에서 봐왔던 냉철한 킬러들과는 폼이 영 다르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심각하게 나누고, TV 앞에 나란히 붙어 앉아 입을 헤 벌린채 여자 앵커를 쳐다보는 모습이 아무래도 `킬러'보다는 오합지졸과(科)다. 자신이 죽여야만하는 여자와 사랑에 빠져 함께 블루스를 추는가 하면 사랑때문에 임무를 완성하지 못한 형을 위해 `사랑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역설하며 팀원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킬러도 있다. 여기에 살인을 청부하는 의뢰인도 범상(?)치 않은데 선생님을 짝사랑한 여고생부터 남자에게 배신당한 여자 앵커까지 가지가지다. 특유의 블랙 유머를 통해 묵직한 여운을 줬던 게 그동안 `장진식' 스타일이었다면「킬러…」는 좀 더 가벼워진 대신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양해지고 화려해졌다. `황당무계한' 소재를 킬러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초점을 맞춰 `그럴듯한' 이야기로 요리해냈고, 한 템포 늦게 뒤통수를 치는 특유의 유머도 연신 배꼽을 쥐게 한다. 도입부의 대규모 폭파신이나 후반부 `오페라하우스'의 살인 장면 등 볼거리도 화려해 "전작들에서 나타난 `치기 어림'을 벗고 세련된 영화"를 만들겠다던 감독의 의도는 어느 정도 반영된 듯 보인다. 대신 참신함은 줄었다. 웃음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일까. 폭소를 유발하는 유머는 종종 말장난 수준이라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 전개가 늘어진 탓도 있겠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유머도 힘이 부쳐보인다. 경찰과 사법 제도에 대한 사회적 불신 등 사회 풍자를 의도한 대목도 그다지 설득력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 변신이 눈에 띄는데 신현준이 모처럼 눈에 힘을 빼고 코믹 연기를 펼쳤고, 영화「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 병사역을 맡아 연기력이 검증된 신하균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또 KBS「가을동화」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 원빈은 내레이션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막내 킬러 역을 맡아 안정된 연기를 펼쳐 스크린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줬다. 10월 12일 개봉. (서울=연합뉴스) 조재영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