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의 걸작 역사드라마 「토지」에서 나이 어린 서희가 보여주었던 당찬 모습을 많은 시청자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7살의 나이로 서희를 연기했던 이재은(21)은 촉망받는 아역 연기자로 한창 주가를 높이며, 세간의 이목을 한몸에 집중시켰다. 어렸을 때의 오밀조밀하고 귀여운 외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강철같은 여인 명성황후의 연적으로 나선다. 이재은은 오는 26일부터 KBS 2TV 대하사극 「명성황후」(수-목요일 오후 9시 55분ㆍ극본 정하연ㆍ연출 윤창범)에 장상궁역으로 투입돼 활력소 역할을 하게 된다. 장상궁은 대전 나인에서 출발, 고종의 총애를 받아 귀인에까지 오르는 인물로 명성황후와는 상반된 활달한 성격을 지녔다. 의친왕 이강의 어머니로 명성황후와는 미묘한 대립관계를 형성할 예정. "사극의 촬영 분위기에 워낙 익숙해 낯설다는 느낌은 없어요. 하지만 오랜만에 출연하는 사극인 만큼 부담은 크죠. 게다가 저는 적어도 사극에서는 기품있는 역할을 많이 해왔는데, 이번에는 정반대의 인물이기 때문에 연기의 폭을 설정하는 데 고민이 많아요." 이재은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극계에서는 잔뼈가 굵은 연기자다. 「토지」를 시작으로「하늘아 하늘아」「조광조」「한명회」등에 출연하면서 웬만한 사극의 주요한 아역은 도맡다시피 했다. 마지막 출연작은 지난 98년의 KBS 1TV 「용의 눈물」. 그래서인지 올해 들어 거세게 몰아친 사극 열풍 속에서 출연 제의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MBC 「홍국영」과 SBS 「여인천하」등에서 제의가 왔어요. 솔깃하기는 했지만 당시 음반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응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아쉬움을갖고 있던 중 이번에 좋은 기회가 찾아온 거죠." 이재은은 최근 연예계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는 MBC FM 「클릭 1020, 이동건-이재은입니다」의 DJ로 출연하고 있으며, 내년 초 개봉예정인 SF영화 「내추럴시티」의 촬영도 한창이다. 특히 지난 여름에는 '가면'이라는 곡을 선보이며 활발한 가수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연기 쪽에 전념할 생각이란다. "가수활동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3분이라는 시간을 위해 1년을 투자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여건이 된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가수로서의 이재은을 보시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리셔야 할겁니다." 라디오 DJ도 다음달 가을 개편과 함께 그만둘 생각.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말솜씨가 많이 늘었는데, 막상 떠나려니 안타깝다"며 인상을 찌푸린다. 만년 아역 연기자로 남아 있을 것 같던 이재은은 영화 「노랑머리」에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과감한 노출연기를 펼치며 성인 연기자로서의 변신에 성공했다. 그에게 이 영화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당시 제 나이로 영화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노랑머리」 출연 제의가 들어오더군요. 성인 연기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 연기인생의 전환점이 됐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죠." 대부분의 삶을 연기와 함께 살아온 이재은은 "연기가 자신의 천직인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중독성이 있다"는 말로 연기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서울=연합뉴스) 최승현기자 vaida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