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화면에 등장한 순간 이성은 일순 마비된다. 퇴폐와 신비를 오가는 눈빛은 정신을 아찔케 하고 금방이라도 키스를 퍼부을 듯한 도발적인 입술은 호흡을 흐트러뜨린다. 풍만한 가슴에서 요염한 허리로,팽팽하게 당겨진 다리로 흐르는 몸의 곡선은 탐하고 싶을만큼 매혹적이다. 동성에게마저 내밀한 욕망을 품게 할 듯 뇌쇄적인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26)는 그러나 말초감각을 부추기는 값싼 쾌락의 대상에서는 또 멀리 있다. 지적이지만 섹시하고,거칠지만 기품있는,그 양립하기 힘든 지점들을 절묘하게 넘나드는 그는 21세기를 위해 창조된 절대관능의 여신처럼 보인다.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액션 어드벤처 "툼레이더"(원제 Lara Croft Tomb Raider.29일 개봉)는 처음부터 끝까지 졸리의 매력을 내세운 영화다. "툼레이더"는 알려진 바와 같이 동명의 인기 컴퓨터 게임을 원전으로 했다.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를 주인공으로 모험을 펼치는 틀을 그대로 빌려왔다. 영국 귀족출신의 유명 고고학자의 딸인 라라는 어린시절 아버지가 유적탐사중 실종된 후 대저택에서 충복 집사들과 함께 살아간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툼레이더"(무덤발굴가)로 자라난 라라는 어느날 우연히 집안에 숨겨진 고대 시계를 발견한다. 때마침 배달된 아버지의 편지에는 그 시계가 시간과 공간을 지배할 수 있는 비밀의 열쇠라는 사실과,5천년만에 찾아온 신비의 일식일에 그 열쇠를 이용해 지구를 정복하려는 악당들의 음모가 적혀있다. 지구가 구원되는 일이야 당연지사다. 실제 게임을 하듯 진행되는 영화의 주된 관심은 관객들이 여전사에게 넋을 잃도록 하는데 있는 듯 하다. 카메라는 한시도 졸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이끈다. 몸의 굴곡을 한껏 강조하는 복장의 그가 이리저리 나르고 구를때 관객은 좋건 싫건 눈으로 그 농염한 육체를 구석구석 훑게 된다. 어쨌든 한 주먹에 적을 때려눕히고,쌍권총으로 괴물들을 처단하는 졸리의 "원 우먼 쇼"는 꽤 볼만하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아이슬란드 설원까지 지구촌 극단을 누비며 펼쳐지는 영화는 때로 "인디아나 존스"같은 모험을,때로 "매트릭스"같은 새로운 액션으로 볼거리들을 엮어간다. "고공 발레액션"이라 이름붙은 우아하고 박력있는 와이어 액션이나 오토바이 돌려치기같은 씬은 가히 압권이다. 자,계속 졸리,졸리,졸리다. 뒤집어 보면 졸리를 제외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사실 영화의 흠을 잡자면 밤을 새도 모자랄 판이다. 이야기는 빈약하고,얼개는 엉성하며,실소를 금할 수 없는 장면들도 즐비하다. 할리우드에서 연기파로 손꼽히는 졸리의 "연기맛"도 통 살려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매혹됐다면 그 약점들에 기꺼이 눈감아 줄 만 하다. 남자 관객일수록 그 관대함의 정도는 커질 듯. 영화속 라라 아버지 역으로 졸리의 실제 아버지이자 영화 "챔프"의 주인공이었던 존 보이트가 출연했다. "콘에어""장군의 딸"을 연출한 사이먼 웨스트가 메가폰을 잡았다. 15세 관람가.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