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이나 다큐멘터리 영화 등 갈수록 대중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역사 영상물의 창작과정에 전문적 역사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역사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빈번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5월25∼26일 건국대에서 열리는 제44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도 일부 역사학자들이 이같은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대회에선 특히 각 분과학회 발표와 별도로 ''멀티미디어 시대의 역사인식-영화와 역사(2)'' ''정보화시대의 영상역사학''이 조직위 추천패널 및 자유패널의 주제로 선정돼 역사영상물에 대한 본격적 토론이 벌어질 전망이다.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MBC ''허준''에서 동시대 인물이 아닌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으로 설정되고,KBS 1TV ''태조 왕건''에서 궁예의 죽음을 자살로 처리하는 등 사극의 잦은 역사왜곡이 역사 영상물 전반에 대한 비평의 계기가 된 셈이다.

건국대 강사 김기덕씨는 전문분야와 대중화의 접점인 역사 다큐멘터리에 주목한다.

KBS ''역사 스페셜''을 지속적으로 모니터하고 있는 김씨는 ''역사가와 다큐멘터리''라는 논문에서 "역사대중화의 가장 큰 장인 다큐멘터리에는 당연히 역사가가 개입돼야 하는 데도 주제선정에서부터 완성까지 대부분의 역할을 방송PD들이 전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담은 영상물이 만들어지도록 역사가들이 개입해야 하며 적극적인 시청자평과 본격적인 리뷰작업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중의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역사왜곡 가능성도 제기됐다.

정근원 미래영상연구소장(영상학 박사)은 "애니메이션은 표현 특성상 사실의 왜곡이 따를 수밖에 없으며 인터넷과 캐릭터산업,컴퓨터게임 등으로 애니메이션의 활용폭이 커지면서 역사왜곡 현상이 더욱 커질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사실과 허구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왜곡된 정보가 반복적으로 장시간 주입되면 인식에 영향을 주게 되므로 역사 관련 부분의 기획에 역사학자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서강대 강사 허구생씨는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분석을 토대로 역사영화의 영웅주의에 대한 평가를 시도했다.

세부적인 것을 과감히 생략하고 인물을 유형화하는 역사영화에서는 영웅 만들기와 함께 영웅 죽이기가 동시에 이뤄진다는 것.

허씨는 "오늘날 대중은 전문 역사가가 생산한 역사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역사를 다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통해 역사지식을 얻는다"면서 "역사가들도 대중이 소비할 수 있는 역사의 생산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상역사학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할 박경하 중앙대 교수는 "요즘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엄청나 사극 작가의 역사구성을 시청자들은 고증 여부에 관계없이 실제의 역사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라며 "사극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과 사람에 대해서는 살을 붙이되 철저한 고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