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서양화가 최병기.

그를 추모하는 첫 유작전이 오는 4월 6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포럼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작가가 청년시절인 60년대에 그렸던 초창기 풍경화에서부터 간경화로 타계하기 직전에 제작했던 작품등 40여점을 선보인다.

유작전은 미망인과 작가 이정연씨(삼성아트디자인연구소교수)등 평소 그와 친분있던 지인들이 함께 마련했다.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최씨는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었던 흔치 않은 작가다.

초반에는 추상과 입체 오브제 등 다양한 실험작업에 몰두하다 40대에 들어 구상성이 강한 작업으로 바꿨다.

''선(線)으로부터''라는 작품제목처럼 선에 대한 탐구가 그의 조형세계에 기둥을 이룬다.

작가는 ''선은 의지의 표현''이라는 개념을 갖고 일생 동안 선과 씨름했다.

1986년부터 선보였던 아크릴 작품들은 그가 선에 얼마나 깊이 빠져있었던가를 가늠케한다.

''노을길'' ''가을빛'' 등 아크릴작들은 생의 마감을 예견하고 있었던 듯 적막한 분위기와 음울한 색조가 화면을 지배한다.

마치 표현주의 대표작가였던 뭉크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미술평론가 김성희씨는 "자연 색조보다 더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색의 대비를 통한 빛의 시각적 효과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크릴을 소재로 한 것도 드문 케이스다.

작가는 화면에 아크릴 물감을 칠한 후 송곳같은 뾰족한 도구로 수도 없이 긁어나가 무수한 선들을 만들어 낸다.

긁어냄으로써 자연의 형상들이 실제 모습보다 더 투명하게 표현되는 독자적인 기법을 개발해 냈다.

1992년부터 그린 성화(聖畵)들은 아크릴작과 성격이 전혀 다른 유화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절망감 때문에 종교에 귀의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됐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에 절규하는 듯한 인간의 모습들을 담았다.

이정연씨는 "그는 대학시절 동급생은 물론 선후배들 중에서도 데생력과 색채감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다"며 그의 요절을 아쉬워 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최씨는 대학원 졸업후 호구지책을 마련키 위해 대학입시생 실기선생으로 나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1990년부터 2년간 미국 뉴욕대학원에서 그림공부를 계속했지만 병마는 끝내 그의 창작욕을 꺾어버리고 말았다.

생전에 개인전을 3번밖에 갖지 못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1978년과 79년에 창작미협 공모전에서 특선과 대상을 수상했다.

4월12일까지.

(02)720-1020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