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살아가는 동안에는 까맣게 잊고 사는 명제다.

지난 1월 고인이 된 송우씨도 지난해 여름 췌장암 선고를 받기 전까지는 단 한번도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견지낚시와 규칙적인 운동으로 단련된 그의 몸은 누구 못지 않게 건강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병원으로부터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의외로 담담했다.

같은 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대학선배를 지켜보며 췌장암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못 살았지만 잘 죽고 싶었다.

KBS2TV 인간극장(연출 심재목,월∼금 오후 8시45분)이 오는 26일부터 5일 동안 방송하는 ''그리운 사람 송우''는 죽음과 맞닥뜨린 그가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송우가 세상에 남긴 공개유서다.

사초출판사 대표이자 우리고유의 낚시법인 견지낚시를 복원한 프로낚시인.

췌장암 선고를 받고 미리 유서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제작진을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제작진은 지난해 10월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월까지의 모습을 기록했다.

7월14일 췌장암 선고를 받은 송씨.

병원에서는 입원치료를 권했지만 외래진료를 고집하며 집필실로 돌아간다.

홈페이지에 연재했던 자전소설과 유언장 작성,비문에 남길 ''이승에서의 마지막 한마디''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하루에 복용하는 약이 30알로 늘었다.

평생 재물욕심 없이 살았던 그에게 병원비도 만만치않다.

3백여권이 넘는 자서전을 대필했지만 재물에 관심이 없엇던 탓에 재산을 모으지 못했다.

살고있는 18평 연립주택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마련해준 것이다.

문득 ''죽는 데도 돈이 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집은 큰아들에게,집필실은 작은 아들에게 주고 시신을 기증하라고 당부한다.

죽기 전에 고향을 한번 보고 싶어 어머니 산소를 찾는다.

도쿄유학생이었다 사회주의를 선택해 월북한 아버지와 이로 인해 어머니와 3형제가 빨갱이 자식으로 겪었던 고초가 눈앞을 스쳐간다.

그는 어머니묘 옆에 일생을 함께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아픔을 기리는 비문을 세운다.

발병 5개월.

이제 양쪽에서 부축해도 움직이기 어렵다.

힘겹게 자전소설을 마친 송우씨는 문병 온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이승에서의 마지막 생일을 맞는다.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다.

막바지 통증에 수없이 까무러치던 그는 1월27일 6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부음을 듣고 달려온 친지들은 그가 생전에 남긴 자전적 유언 ''그리운 사람아''라는 장문의 글을 읽고 오열한다.

1월29일 눈발이 날리는 하늘 아래서 그를 태운 영구차는 선산으로 향한다.

4개월여 동안 송씨를 지켜본 송재목 PD는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하며 주변을 정리해가는 그의 모습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교훈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