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붓을 놓고 있는 운보(雲甫) 김기창(88) 화백.

그는 비록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그의 생명력만큼이나 강하다.

지난 7월 ''미수(米壽)기념 특별전''에 이어 오는 28일부터 서울 반포 센트럴시티에 있는 운보갤러리에서 ''운보 김기창 스케치전''이 열린다.

센트럴시티 마르퀴스 플라자 3층에 위치한 운보갤러리 개관 기념전으로 그의 초기 스케치 작품 50여점을 선보인다.

대부분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북한 공훈화가인 동생 기만(71)씨의 그림 10여점도 함께 전시된다.

운보의 작품세계는 1993년 ''팔순기념회고전''(예술의 전당),1994년 운보전작도록 발간,그리고 올해 ''바보예술 88년-운보 미수기념 특별전''(갤러리현대·조선일보미술관)을 통해 정리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대규모 전시회와 달리 회화의 밑바탕인 스케치 작품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기 위해 기획된 것.

치밀함과 감성이 담겨있으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의 필력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전명옥 운보갤러리 기획실장은 "운보는 1980년대 세계 화필기행 때를 제외하면 1970년 이후 스케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밑그림 없이 바로 작품제작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 전시작들은 운보가 전통 해학과 순수함 자연회귀 사상을 독특한 기풍으로 ''바보산수·청록산수''를 구현하기 이전의 작품들인 셈이다.

주목되는 작품은 50년대 이미 동양화 개혁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 입체파 경향의 ''보리타작''과 아이를 업은 ''여인'' 등의 스케치다.

편종과 악사를 주제로 그린 ''3악사''(1959년작),''탈춤''(1956년작) 등에서 운동감과 음악 몸짓 등 운보의 다양한 필력을 엿볼 수 있다.

베트남전에 기록화가로 종군하면서 제작한 ''월남전 스케치''(1972년작) 등은 사인펜과 채색으로 그려 색채감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1981년 운보와 함께 세계 18개국 화필기행에 나섰던 이규일(월간아트대표)씨는 "운보의 스케치에는 생각과 해학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들려주는 일화 한토막.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스케치할 때의 일입니다.

낙타를 타고 있는 청년을 그렸는데 스케치가 끝난 후 그 청년이 운보에게 다가와서 모델료를 내놓으라고 떼를 썼습니다.

그러자 운보는 씩 웃으면서 ''이것은 당신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노인''이라며 두건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 청년은 투덜거리면서 돌아가더군요"

이번 운보갤러리 개관에 이어 내년 1월 중에는 충북 청주의 운보 집에 ''운보미술관''이 들어선다.

운보미술관에서는 그의 대표작들을 상설 전시할 예정이다.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