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등골을 먼저 타고 흐른다.

이성이 무섭다고 느끼기 전 이미 정수리에 닿아 목덜미를 훑어내린다.

공포영화 "가위"(감독 안병기)는 관객의 심장을 조이려는 목표를 향해 충실하게 나아간다.

최근 유행처럼 코미디를 곁눈질하거나 피바다에서 풍기는 비릿한 끔찍함으로 승부하려 들지도 않는다.

일상의 공간에서 찾아오는 죽음의 손길은 잠자리에서 목을 짓누르는 "가위"처럼 오싹하고 섬뜩하다.

영화는 대학 동아리 "어 퓨 굿 맨"을 축으로 진행된다.

예쁘고 착한 혜진(김규리),단짝친구 선애(최정윤),학교 간판타자 현준(유지태),캠퍼스 최고의 미녀 미령(조혜정),사시에 패스한 정욱(유준상),영화감독 지망생 세훈(정 준).

이들의 동아리에 신비한 이미지의 경아(하지원)가 새로 가입하면서 묘한 기류가 흐른다.

현준이 경아에게 마음을 빼앗기자 그를 짝사랑하던 선애는 절망한다.

선애는 "재수없는 아이"로 불리던 경아의 과거를 폭로하고 경아는 혜진에게도 외면당한 끝에 자살하고 만다.

그로부터 2년후.

미국으로 이민갔던 선애가 돌아온다.

"우린 다 죽을 거야.난 알고 있어."

공포에 질린 그의 말대로 동아리 회원들에게 차례로 참혹한 죽음이 닥친다.

영화는 할리우드 공포물인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와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지닌다.

익숙한 구조와 예측가능한 전개속에서도 무서움을 이끌어내는 솜씨가 돋보인다.

사건의 비밀을 감추었다가 후반부에 드러내는 방식이 짜임새있다.

유지태나 김규리 하지원등은 비교적 살아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관객의 코앞에 들이미는 잔혹함은 공포의 강도를 높인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로 손을 사정없이 내리찍거나 눈알을 헤집어 파내는 장면이 리얼하다.

사건이 끝났다고 가슴을 쓸어내릴 무렵 등장하는 반전도 긴장감있다.

개봉에 앞서 부천 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돼 호평받았던 "가위"에는 그러나 아쉬운 구석또한 적지 않다.

일단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성격이나 관계묘사를 소홀히 한 나머지 이야기가 종종 건너뛴다.

경아가 혜진에게 집착하는 이유나 이기적이지만 명석했던 변호사 정욱이 사이코처럼 돌변하는 과정들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다.

음악의 잦은 간섭 역시 신경쓰인다.

공포조장용 음악은 시종 "이제 곧 무서울꺼야"라는 듯 장면을 앞질러간다.

찢어질듯 시끄러운 음악이 귀를 먼저 놀래키는 사이 공포신경은 재빨리 보호벽속으로 숨어버린다.

끝무렵 피뢰침이 타이밍도 절묘하게 벼락에 맞아 부러지는등의 작위적 설정이나 간혹 보이는 어설픈 연기도 세련미를 떨어뜨린다.

29일 개봉.

<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