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지난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2차 실무작업반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금융위 제공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지난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2차 실무작업반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금융위 제공
"학자로서의 소신과 현실 정치의 타협점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최근 '은행 돈잔치' 논란으로 '은행 과점 체제 해소'라는 중책이 맡겨진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두고 금융권에선 이 같은 설왕설래가 나옵니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신인 김 부위원장은 지난해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 교사'로서 관련 공약을 총괄했으며 당선 이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을 거쳐 차관급인 금융위 부위원장에 안착했지요.

국내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최고위급 관료가 됐지만 원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정통 경제학자이자 거시경제 및 화폐금융 분야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상치 못했던 난제가 주어졌습니다. 지난해 글로벌 금리 상승에 힘입어 실적이 크게 개선된 은행들이 임직원들에게 후한 성과급을 지급하자 '돈 잔치' 비판 여론이 비등하면서 은행 산업 구조적인 측면으로까지 불똥이 옮겨붙은 것입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지난 2월 "'은행 돈잔치'가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도록 금융당국이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곧바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나서서 "우리나라 여·수신 시장에서 5대 시중은행의 점유율이 워낙 높다 보니 가격 책정 시 과점적인 게임을 하는 측면이 있다"며 은행을 완전경쟁 체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요.

이 같은 정권 수뇌부의 발언은 금융권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단 일주일만인 지난달 22일 금융위 산하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가 발족했고 각 금융권 협회에는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제출하라는 엄명이 떨어졌지요.

TF와 별도로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한 실무작업반도 꾸려졌으며 이곳에 참여하는 민관 전문가들만 총 14곳, 30여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은 매주 회의를 열어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를 수집, 정리하고 기대 효과와 부작용, 현실가능성 등을 하나하나 검증해가고 있지요.

TF와 실무작업반을 총괄하면서 오는 6월말까지 최종 대책을 마련해야 할 책임이 바로 김 부위원장의 두 어깨 위로 올려진 것입니다.

놀랍게도 TF에선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단기간임에도 정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TF 발족식을 겸한 지난달 22일 회의 땐 △은행 경쟁 촉진 △금리 체계 개선 △임직원 보수 체계 점검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사회공헌활동 활성화 등 6대 검토과제를 선정했고 이어 지난 2일 실무작업반 1차 회의 때 예대금리차 공시 확대 방안이 확정, 발표됐습니다.

엿새만에 다시 열린 지난 8일 실무작업반 2차 회의에서도 오는 5월 가동될 전 금융권 대환대출 플랫폼 운영 방안과 함께 향후 대상 범위를 기존 신용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까지 넓히겠다는 계획안까지 공개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도 미묘한 뉘앙스의 변화가 감지됩니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달 22일 첫 TF 회의에서 "(은행들이) 미래를 위한 혁신과 변화보다 안전한 이자수익에만 안주하는 영업행태 등을 전면 재점검해 과감히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한주가 흐른 지난 2일 회의에선 "실질적인 유효 경쟁을 촉진하는 측면에서 과제를 검토하고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며 수위를 낮췄습니다.

김 부위원장의 학계 동료들도 기본적으로 '은행의 완전경쟁 체제'에 대해선 실현 불가능한데다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입을 모읍니다.

김 부위원장의 인맥을 총동원해 지난달 꾸려진 금융위 금융발전심의회 소속 한 서울대 교수는 "완전경쟁이 되려면 수요자(금융소비자)와 공급자(은행) 모두가 가격(금리) 수용자가 돼야 하는데 중앙은행이 금리를 결정하는 현행 시스템에선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습니다. 이어 "전세계적으로도 은행을 완전경쟁으로 풀어놓은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고 지적했지요.

보험연구원장을 지낸 김대식 한양대 명예교수도 "설사 완전경쟁을 추구한다고 해도 현행 5대 은행 과점 체제에서 소규모 은행 몇 개를 더 추가해봤자 큰 의미가 없을 테고 결국 대형 은행을 쪼개 중소형 은행 여러 개로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결국 1998년 IMF 외환위기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 부위원장 스스로도 이 같은 측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정통 경제학자로서 현실 정치 참여를 선택한 그가 '은행 완전경쟁'을 외치는 정치권과 여론의 요구에 오는 6월까지 어떤 답을 내놓을지 한번 지켜봐야겠습니다./(끝)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