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간 우량 보험회사까지 금융당국의 적기시정조치 대상이 될 텐데 걱정입니다.”

국내 한 대형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올해 들어 시장금리가 급등하면서 보험사의 건전성 지표로 활용되는 지급여력(RBC) 비율이 크게 떨어져 회사마다 비상이 걸렸다. 보험업계는 이 같은 금리 상승 리스크가 새 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는 내년부터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만큼 연말까지라도 RBC 악화에 따른 적기시정조치를 유예하는 등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금리 급등에 주름살 깊어지는 보험사

우량 보험사들까지…재무건전성 '초비상'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생명·손해보험업계는 최근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인한 RBC 하락에 따른 적기시정조치를 연말까지 유예해달라는 내용의 제도 개선안을 금융당국에 건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적으로 금리 상승은 주로 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보험사의 수익을 개선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동시에 보유 중인 채권 가치를 떨어뜨려 급격한 금리 상승 시 일시적으로 자산 건전성이 나빠질 수 있다.

문제는 올 들어 시장 금리가 급등세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3.35%로 작년 말(연 2.25%)보다 1.1%포인트 뛰었다. 보험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0.1%포인트 오르면 RBC 비율은 5%포인트가량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단순 계산으로도 RBC 비율이 작년 말에 비해 50%포인트 정도 하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당국은 현재 보험사들에 RBC 비율을 150% 이상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보험업법에 따라 100% 선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생보사 중에선 DB생명(157.7%) 흥국생명(163.2%) KDB생명(168.9%) 한화생명(184.6%) 등이, 손보사 가운데서는 흥국화재(155.4%) AXA손해보험(169.7%) 한화손해보험(176.9%) KB손해보험(179.4%) 등이 금융감독원 권고치에 근접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금감원 권고치는 물론 법적 기준마저 밑돈 보험사가 여럿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금융당국은 해당 보험사에 경영개선권고 등 적기시정조치를 내릴 수 있다.

○“올해는 과도기 체제…정책 배려 필요”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보험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다. NH농협생명은 지난 8일 23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다음달에도 2000억~4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판매할 예정이다. 한화생명 ABL생명 메리츠화재 등도 후순위채 및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해 각각 1000억~5000억원의 자금을 신규 조달할 계획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RBC는 올라갈지 몰라도 연 4~5% 안팎의 고금리를 물어야 하는 만큼 보험사의 수익 기반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내년 보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IFRS17이 도입되면 금리 상승 리스크가 크게 해소되는 상황에서 현 RBC 비율에 집착해 보험사별로 막대한 자본 조달 비용을 물리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내년 도입될 신지급여력제도(K-ICS)를 조기 적용해 RBC 비율이 100% 이하여도 K-ICS 비율이 100% 이상이면 적기시정조치를 유예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보험사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업계와 협의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