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직접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를 조성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8~9개월간 주요 기업이 만든 ESG 펀드의 규모만 2000억원 선에 달한다. 대기업이 ESG 경영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스타트업을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기업 주도 스타트업 펀드 급증10일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지난달 29일 400억원 규모의 ESG 스타트업 펀드를 조성했다. 특정 산업군 내 대표 기업이 협업한 국내 첫 사례다. 통신 3사가 각각 100억원을 출자했다. 펀드 운영사인 KB인베스트먼트 역시 100억원을 내놨다.이 펀드는 탄소 저감 등 친환경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육성에 전액 사용될 예정이다. 각 사가 기존에 운영하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과 스타트업 펀드를 연계해 운영할 계획이다. 투자 여부는 3사 대표가 참여하는 자문위원회가 결정한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ESG 혁신 기술을 함께 발굴하기로 뜻을 모았다”며 “통신사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 한층 더 체계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본격적으로 조성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SK텔레콤과 카카오는 작년 8월 ICT업계 최초로 200억원 규모의 ESG 펀드를 만들었다. 이 펀드는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ESG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돕고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데 앞장서는 스타트업이 지원 대상이다. 지난해엔 청각장애인이 운행하는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액터스’와 시각장애인용 점자 콘텐츠를 제공하는 ‘센시’, 어린이 대상 메타버스 기반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마블러스’ 등이 각각 30억원의 자금을 수혈받았다.제조업체 중에선 LG화학이 스타트업 펀드 조성에 적극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신한은행과 1000억원 규모의 ‘ESG 동반성장펀드’를 조성해 중소기업의 ESG 경영을 지원하고 있다. 9월엔 롯데케미칼이 500억원 규모의 ESG 전용 펀드를 만들었다. 탄소중립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친환경 전략 핵심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게 목적이다. VC, 은행과는 투자 목적 달라지금까지 스타트업 투자를 주도한 곳은 액셀러레이터(AC)와 벤처캐피털(VC) 등이다. 정부의 모태펀드 자금에 자체적으로 모은 자금을 더해 스타트업 지분을 사들였다. 이들은 투자금 회수에 방점을 두고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추가 투자받거나 상장 가능성이 높은 업체에 자금이 몰린 배경이다. 스타트업 투자의 또 다른 축인 시중은행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최근 펀드를 조성한 대기업은 스스로를 ‘전략적 투자자’(SI)라고 설명한다. 투자한 스타트업과 제휴를 맺고, 이를 통해 자사의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주된 목표다. 통신사 기지국 구축에 필요한 자재를 친환경 소재로 만들 수 있는 스타트업이 있다면 통신 3사 공동펀드가 투자하는 식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ESG 경영을 강화할 수 있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얻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어떻게 만드느냐보다 어떻게 버리느냐가 중요한 시대입니다.”미국 1위 정보기술(IT) 자산 처분 서비스(ITAD) 기업인 ERI의 존 슈게리안 대표(사진)는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미국 내 23개 주에서는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의 제품을 생산할 때 친환경적인 폐기 방안을 구축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도 전자 폐기물의 활용 방안에 대한 고민 없이는 미국에서 스마트폰을 팔기 어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ERI는 미국 최대 오프라인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의 폐기물 독점 수거 업체다. 매월 2600만㎏ 규모의 전자 폐기물을 처리한다.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은 22.8%다. 삼성전자 LG전자는 물론 델, HP, 파나소닉, 소니, 미쓰비시, 도시바 등 전 세계 IT 제조업체 중 75곳 이상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슈게리안 대표는 전자폐기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아직도 전 세계 전자폐기물 재활용률은 17%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83%가 우리의 잠재 시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전 세계 ITAD 시장은 154억달러 규모다. 연평균 9.7% 성장해 2026년에는 245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는 폐기물 처리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인 ‘옵텍’과 파쇄 기술인 ‘슈레더’ 등을 ERI의 핵심 기술로 소개했다. 옵텍을 적용한 로봇이 수거된 IT 기기를 재사용(reuse)과 재활용(recycle)으로 분류하는 것이 첫 단계다. 이 중 재사용이 가능한 기기는 다시 포장해 중고로 판매한다. 재활용으로 분류된 IT 기기는 슈레더를 통해 파쇄된 뒤 알루미늄과 철, 플라스틱, 구리, 금, 은, 코발트 등으로 되돌린다. 현재 회사의 매출 비중은 재사용이 40%, 재활용이 60%다.한국도 순환경제에 대한 인식 변화와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슈게리안 대표의 조언이다. 그는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소비자, 정부 등 순환경제에 속한 모든 구성원이 전자폐기물의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며 “한국 기업과 파트너십을 확대해 순환경제 실현을 최대한 앞당기는 데 힘을 더하고 싶다”고 말했다.ERI는 LS니꼬동제련 등 국내 기업과 협업 중이다. LS니꼬동제련은 ERI가 수집한 전자회로기판(PCB)을 수입해 폐기한 후 금속 부산물을 뽑아내고 있다. 이 회사는 2009년 500만달러를 투자해 ERI 지분 10%를 확보했다.장현주/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코로나19 악몽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항공사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유럽을 중심으로 항공기의 탄소 배출을 줄이라는 압박이 본격화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추가로 부담해야 할 ‘탈탄소 비용’이 항공사의 원가 구조를 악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1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의 65%를 지속 가능한 항공연료(SAF)를 활용해 감축하기로 의결했다. SAF는 바이오 대체 연료를 사용해 생산한 항공유를 의미한다. 기존 항공유 대비 탄소 배출을 80%까지 줄일 수 있다. 주로 동식물성 기름이나 폐식용유, 사탕수수 등을 활용해 SAF를 생산한다.그동안 항공사는 ‘하늘의 기후악당’으로 불렸다. 자동차나 버스, 기차에 비해 탄소 배출량이 배 가까이 많아서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등에 따르면 승객 한 명이 1㎞ 이동할 때 탄소발자국은 버스 105g, 중형차(디젤) 171g, 비행기(단거리)는 255g 등이다.이런 이유로 항공 부문에 대한 탄소배출 규제는 계속 강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5년부터 EU에서 이륙하는 모든 비행기에 SAF 사용을 의무화했다. SAF 혼합 비율은 2025년 2%에서 2050년 63%로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문제는 가격이다. SAF를 비롯한 바이오 항공유는 기존 항공유 대비 가격이 적게는 세 배, 많게는 다섯 배가량 비싸다. 업계에 따르면 2025년 EU 출발 항공편에 SAF 의무 비중인 2%가 적용된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37만7152달러(약 4억600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유럽에는 국내 항공사의 ‘알짜 노선’이 포진해 있는 만큼 비용 부담은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국내 항공사가 SAF를 공급받는 것도 쉽지 않다. 국내에서 SAF 공급 계약을 맺은 항공사는 대한항공뿐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2월 프랑스 현지 정유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파리~인천 노선에 SAF를 1%가량 혼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SAF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업체는 국내에 전무하다. 지난해 6월 대한항공과 현대오일뱅크가 ‘바이오 항공유 제조 및 사용 기반 조성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맺긴 했지만, 실제 제품 생산 및 사용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