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처벌보다 리스크 예방에 중점…금융권, 긍정적 평가
'금감원 힘 너무 빼 감독 느슨' 지적에 소비자 보호 역행 비판도
취임 100일 맞는 금감원장…금융사 규제보단 지원에 방점
국내 금융권의 감독을 총괄하는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오는 12일 취임 100일째를 맞는다.

10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정 원장의 취임 후 행보를 보면 금융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규제, 사후 감독보다는 사전 감독 기능 강화와 리스크 예방 지원에 정책의 방점이 찍혀있다.

정 원장은 지난 8월 취임 일성으로 금융감독의 본분은 규제가 아닌 지원에 있다며 임직원에게 금융시장과의 활발한 소통을 당부했다.

이를 보여주듯 정 원장은 지난 3일 금융지주 회장들과 간담회에서 금감원 검사 체계를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정비하겠다고 예고했다.

종합검사로 금융사를 밀어붙이기보다는 금융사 규모, 영위 업무의 복잡성 등 금융권역별 특성에 맞는 검사 주기·범위·방식 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며 사후적 처벌보다 예방에 중점을 두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금융지주의 경쟁력 제고를 지원하겠다는 의지도 강조했다.

정 원장은 "금융지주회사제도의 도입 목적인 시너지 제고를 위해 금융지주그룹 내 정보공유가 더 원활하게 이뤄질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이달로 예고됐던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의 종합검사가 보류된 것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도 있지만 정 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정 원장은 지난 9일 시중 은행장과 간담회에서도 예방적 감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상시감시 기능 강화와 리스크 중심 검사 방침을 재천명했다.

이는 강력한 압박을 통한 금융 감독을 천명했던 전임 윤석헌 원장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금융시장 및 업계와의 협력을 강화해 감독 정책과 집행의 유기적 조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정 원장이 금감원의 힘을 너무 빼버려 결과적으로 금융 감독을 느슨하게 만드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 시민단체 금융정의연대는 정 원장이 금융사 종합검사 개편을 예고한 데 대해 금융소비자 보호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금융정의연대는 "2015년 금융위원회가 규제를 완화하면서 종합검사가 폐지된 적이 있는데 이는 대규모 사모펀드 피해 양산이라는 쓰나미를 일으켰다"면서 "규제 완화의 결과를 알면서도 반복하는 것은 금융사의 불법행위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원장의 유연한 감독 정책이 막대한 소비자 피해를 유발한 라임·옵티머스와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사의 사전 내부 통제 강화가 대규모 금융사고를 막는 데 효율적인 방법이고 금감원을 위험 예방 시장 조력자로 만들겠다는 정 원장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취임 100일 맞는 금감원장…금융사 규제보단 지원에 방점
한 시장 관계자는 정 원장의 감독 정책 방향에 대해 "처벌과 규제로 압박해 금융사의 반발에 직면하는 것보다 금융사들이 본연의 역할인 내부 통제를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사전 감독 기능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이전보다) 세련된 방식으로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감원 내부 구성원들의 평가도 대체로 좋은 편이다.

정 원장은 직원·노조 등과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으며 올해 국정감사에서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요직을 거친 관료 출신답게 전문성과 노련함을 보여줬다는 내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 원장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와 관련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중징계 소송, 라임·옵티머스 펀드 등의 사태와 관련된 금융사 제재, 가계 부채 등 불확실한 대내외 금융시장 변수, 금감원의 인사 적체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처벌보다는 리스크 예방에 중점을 두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요동치는 금융시장에서 끝까지 이를 지킬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한다"면서 "현안 해결 과정을 보면 (정 원장이 밝힌 감독 정책의) 성패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