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상속세 중 절반가량은 태광실업 주식으로 물납
"제대로 처분 못 하면 국고 손실"…다스 비상장주식은 42회 유찰
박연차 유족, 3천억대 비상장주식으로 상속세 낸다…국세청 승인
태광실업 창업주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로 잘 알려진 고(故) 박연차 회장의 지분 등 재산을 물려받은 사주일가가 3천억원대 비상장주식으로 상속세 일부를 납부할 전망이다.

6천억원 이상의 상속세 중 절반가량을 태광실업 비상장주식으로 내는 것인데, 이례적으로 막대한 규모의 비상장주식 물납이라 향후 주식 처분 상황에 따라 '제2의 다스'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 태광 사주일가, 3천억원대 비상장주식으로 상속세 물납
12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태광실업 사주일가는 상속세로 비상장주식 물납을 신청했고 국세청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공동 조사를 벌인 뒤 이를 승인하기로 지난달 말 결정했다.

지난해 2월 박연차 회장 별세 후 고인이 소유하고 있던 태광실업 지분 55.39%는 법정 상속 비율대로 배우자와 아들, 딸 등 가족에게 넘어갔다.

부인 신정화 씨가 15.10%를 받았고 아들 박주환 태광실업 회장과 딸 박선영 태광실업 고문, 박주영 정산애강 대표, 박소현 태광파워홀딩스 전무가 각각 10.07∼10.08%씩 받았다.

이 지분을 비롯해 고인이 상속한 재산에 대한 태광실업 사주일가의 상속세는 박주환 회장이 대표 상속인으로 국세청에 신고했다.

태광실업 사주일가는 태광실업 지분 1%에 약 190억원 가량으로 가치를 산정해 상속세를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속된 지분 55.39%를 약 1조원 가치로 본 것이다.

상속된 지분과 금융재산, 부동산 등 다른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세는 6천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태광실업 사주일가는 이 중 절반에 가까운 3천억원대의 세금을 태광실업 비상장주식으로 물납하겠다고 국세청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태광실업 사주일가가 신고한 지분 가치는 2019년 태광실업이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당시 예상 가치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당시 업계에서는 태광실업의 기업가치를 약 5조원으로 추산해 지분 1%당 500억원 가량이 될 것으로 봤다.

IPO 추진 때는 미래가치 등을 포함해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실제 상속세 신고 때 산정한 지분가치가 IPO 추진 때의 절반도 되지 않는 것이다.

다만 물납 비상장주식 가치 평가는 법과 시행령에 규정돼있는 방식대로 진행했으며, 수개월 간의 현장 조사를 거쳐 적법하게 확정했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박연차 유족, 3천억대 비상장주식으로 상속세 낸다…국세청 승인
◇ 42회 유찰된 다스 전례 있어…제3자 통한 저가 재매수 가능성도
문제는 막대한 규모로 물납된 비상장주식의 향후 처분 여부다.

비상장주식은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외부인이 선뜻 사들이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제대로 팔리지 않을 경우엔 세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국고가 손실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비상장주식 상속세 물납의 허점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는 다스다.

상속세로 물납된 다스 비상장주식은 2011년 이후 2017년까지 캠코가 매년 공매를 진행했지만 총 42회 유찰된 바 있다.

캠코는 태광실업 비상장주식 물납분도 향후 공매로 매각해 세금을 충당해야 하는데, 이 주식이 '제2의 다스'처럼 제대로 팔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속세법은 물납 시 국공채, 상장주식, 국내 소재 부동산으로도 상속세가 부족할 경우 비상장주식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스 상속세 납부 당시 관련자들이 부동산에 근저당을 설정하는 '꼼수'로 비상장주식으로 세금을 납부했다는 의혹을 받은 이후 정부는 나머지 상속재산으로 상속세 납부가 가능하면 비상장주식 물납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제도를 바꿨다.

그런데도 태광실업 사주일가가 수천억원대 비상장주식 물납을 승인받은 것은 현금이나 부동산 등 다른 자산으로는 상속세를 다 충당하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국세청은 태광실업 사주일가의 상속재산 중 비상장주식과 부동산이 절반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재산 상황도 조사한 결과 요건에 어긋나지 않아 물납을 승인했다는 입장이다.

비상장주식 물납의 또 다른 문제는 물납한 주식이 더 싼 가격으로 사주일가의 손에 다시 들어갈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은 상속세를 낸 본인과 특수관계인은 비상장주식을 물납한 가격 이하로 다시 살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제3자를 통한 저가 매수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본부장)는 "비상장주식 상속세 물납의 경우 사후적으로 처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손해를 봐 국고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상장주식 가치 평가 방식이 법에 규정돼있다고는 하지만 과대 평가될 소지가 있다"며 "이번 경우처럼 수천억원에 이르는 물납을 받으려면 외부 전문가들까지 참여해 보다 정밀하게 평가를 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