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자율주행 인프라 구축 사업을 겨냥해 수십~수백억원을 투자한 중견·중소기업 수십 곳이 ‘시계 제로’ 상황에 직면했다.

기획재정부가 기술표준을 이유로 이달 시작하기로 했던 자율주행 인프라 구축 본사업을 연기할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달 23일 열린 제5회 재정운용전략위원회에서 자율주행 인프라를 구축하는 차세대지능형교통체계(C-ITS) 사업 통신기술과 관련해 “기존 와이파이 방식과 새로운 방식을 비교·실증할 수 있는 사업을 내년에 우선 추진한 후 그 결과를 반영해 후속 투자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와 관련,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시범사업에서 주요 기술로 사용해온 차량용 단거리 통신시스템(DSRC)으로 본사업을 하지 말란 얘기”라며 “올해 예산은 있어도 내년 예산이 안 나오면 올해 본사업도 유야무야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대보정보통신, 아이티텔레콤, 에티포스, 이씨스, 카네비컴, 켐트로닉스 등 기업들은 단체 행동을 위한 연합체를 구축했다.

자율주행 통신기술은 와이파이 기반의 DSRC와 이동통신 기반 C-V2X 두 가지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몇 년간 DSRC로 시범사업을 하는 등 실증 과정을 거쳐왔다. 기업들이 DSRC에 집중 투자한 이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C-V2X 기술을 밀어왔다. 이 기술은 실증 작업을 거의 거치지 않았다는 평가다.

중견기업 A사 대표는 “3분기 본사업이 나오며 4분기엔 공급해야 해 상반기 비싼 값에 반도체를 사고 자재까지 발주하느라 수십억원을 썼다”며 “본사업이 미뤄질 수 있단 얘기에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푸념했다. 중소기업 B사 대표는 “어느 기술이든 더 좋은 걸 쓰는 게 맞다”면서도 “몇 년 동안 손 놓고 있다 이제야 ‘두 기술을 비교해 보라’는 건 지난 10년간 쏟아부은 예산 수천억원과 연구개발 노력을 폐기처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본사업이 늦어지면 ‘디지털 뉴딜’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디지털 뉴딜 계획은 2027년까지 세계 최초로 전국 주요 도로의 완전자율주행을 상용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수도권, 경부선 등 815㎞ 구간에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7월 예정된 본사업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본사업이 지연되지 않도록 잘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