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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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지난 24일 흥미로운 논평을 냈습니다. A4용지 석장 분량으로 '가계부채 리스크를 증가율 관리가 아닌 부채 축소로 해결하자'는 제목의 논평이었는데요.

당시 이 논평을 비중 있게 다룬 언론은 비록 많지 않았지만 생각해볼 대목이 있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2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의 위험성은 비단 참여연대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꾸준히 경고해 왔습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역시 최근 "(가계부채 문제 등) 금융 불균형에 대한 대응을 소홀히 하면 경기와 물가에 대단히 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연내 한두 차례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했지요.
참여연대가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모습.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참여연대가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모습.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그런데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보다 급진적인 제안을 내놓습니다. 참여연대는 "가계부채 증가율을 4% 수준으로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 정책 방향은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이미 실행된 대출에 대해서도 안정적으로 축소해나가는 '디레버리징'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은행에서 낮은 금리에 돈을 빌려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하면 수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대출을 통상 '레버리지(지렛대)'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참여연대는 개인들이 현재 지고 있는 대출을 갚도록(디레버리징) 유도해 가계부채의 절대 규모를 줄여나가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입니다.

얼핏 보면 타당한 의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빚을 갚으면 동시에 자산도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1000만원을 빌려 비트코인을 샀다고 치면 그 순간 빚과 함께 자산(비트코인)도 각각 1000만원씩 늘어납니다.

만약 1년 뒤 은행으로부터 1000만원을 상환하라는 통보가 온다면 그만큼 비트코인을 다시 팔아야 하니 자산도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비트코인은 시장성이 있으니 곧바로 팔 수라도 있습니다. 대출을 받아 시장성이 떨어지는 주택이나 토지 등 부동산을 샀다면 눈물을 머금고 헐값에 매각해야 하겠지요.

당연히 경기는 위축될 것이고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여 경기가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초저금리가 지속되고 본격적인 백신 접종으로 실물 경기도 살아나고 있어 현재로서 이 같은 위험성이 크지는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정부 역시 '디레버리징'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성장이나 고용 등 다른 정책 목표를 모두 포기하고 가계부채 해소에만 집중한다면 디레버리징을 못할 이유도 없겠으나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최대한 성장 동력을 꺼뜨리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으로 증가율을 관리해가는 게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참여연대가 디레버리징을 위해 오는 7월부터 도입되는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적용' 범위에 전세자금대출이나 예적금담보대출 등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부작용만 더 키울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DSR은 매달 갚아나가는 원리금 상환액을 자신의 연 소득으로 나눈 지표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비율을 은행별로 적용해 왔지만 7월부터는 개인 차주 단위로 변경해 그만큼 대출 가능 한도를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DSR을 40%로 제한하는 것은 그만큼 갚을 수 있는 범위에서 돈을 빌려가라는 취지인데 전세자금대출이나 예적금담보대출은 확실한 담보가 있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맞다"며 "게다가 만약 전세자금대출마저 규제하면 무주택 서민이 보증금을 구하지 못해 고액의 월세를 내야 하는 등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폭증한 가계부채는 사실 같은 기간 천정부지로 올라간 집값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렇다면 억지로 가계부채를 줄이라고 할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집값을 떨어뜨릴 수 있는 정책부터 주문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서울 역세권에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대단지 신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할 수 있는 그런 부동산 정책을 말입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