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상 반영 맥주 ‘테라’, 역전의 한방
원조 소주 ‘진로’, 젊고 트렌디한 소주로
‘테슬라’ ‘테진아’ 소맥 신조어 확산
오성택 하이트진로 상무(마케팅실장) / 사진=하이트진로

오성택 하이트진로 상무(마케팅실장) / 사진=하이트진로

2019년 3월 하이트진로 영업사원 20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맥주 신제품 ‘테라’ 출시 설명회.

마케팅실장 오성택 상무의 프리젠테이션은 수 년째 ‘맥주 2등’으로 억눌려 있던 영업사원들의 사기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다시 1등 찾자”, “이거(테라) 물건이다”같은 기대섞인 파이팅이 터져나왔다.

기대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역대 맥주 중 가장 빠른 속도로 100만 상자 판매를 돌파했다. 판매 속도가 너무 빨라 출시 두 달만에 맥주 부족 사태를 겪을 정도였다. 출시 4개월 후 두 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했다.

상황 1 맥주 MS 내리막길
도전 1 ‘시대상을 반영한 맥주’로 반전
하이트진로는 2012년 경쟁사에 MS 1위 자리를 내준 후 고전을 거듭했다. 브랜드에 새 옷을 입히는 리뉴얼도 여러 번 진행했고 한정판 맥주도 출시했지만 하락세를 막기는 어려웠다.

상황을 역전시킬 한방이 필요했다. ‘대한민국 대표맥주’를 만들자는 목표로 신제품 태스크 포스 팀을 꾸렸다.

오성택 상무는 “대한민국 대표맥주를 만드는 핵심 전략으로 ‘시대상을 반영한 맥주’를 선택했다”며 “맥주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친구같은 존재이므로 반드시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미세먼지의 시대, 인공을 거부하는 시대라서 소비자들이 환경과 천연, 자연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진단했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해 ‘청정라거’를 핵심 콘셉트로 잡았다.

콘셉트를 실현하는 과정이 특히 어려웠다. 원료에선 전세계 거의 모든 맥아를 연구한 끝에 호주산 청정맥아를 찾았다. 제조공정상 청정을 위해 발효과정 중 자연 발생한 탄산만 사용하는 ‘100% 리얼탄산’ 공법을 적용했다. 시각적 청정함을 위해 국산 레귤러 맥주 최초로 녹색병과 토네이도 패턴을 적용했다.

청정라거 테라의 등장에 시장은 뜨겁게 반응했다. 특히 유흥 시장 반응이 굉장했다. 시장 반응의 척도로 통하는 서울 약 100개 상권에서 중병(500㎖) 점유율이 역전됐다. 지방 상권에서도 테라 출시 전 대비 점유율이 2~3배 뛰었다.

출시 2년만에 누적 판매 16억5000만 병(500㎖)을 돌파했다. 1초에 26병씩 판매한 셈이다.

상황 2 소주 시장, 추가 성장 모멘텀 필요
도전 2 ‘원조’ 재해석 → 젊고 트렌디한 소주로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은 대한민국 대표 소주 브랜드로 통한다. 그런데 참이슬의 대표성이 자칫 ‘올드해보인다’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런 우려를 타개하고 소주 시장에서 추가 성장 모멘텀을 확보해야 했다.

철저한 시장 조사와 고민 끝에 해답을 회사 내에서 찾았다. ‘진로’의 재해석을 시도하기로 한 것.

진로는 1924년 대한민국 최초로 선보인 양산 소주다. 그만큼 오랜 기간 국민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원조’의 가치를 갖고 있다.

오 상무는 “원조라는 헤리티지에 기반해 시대가 원하는 제품으로 재해석해 출시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국 소주 시장을 주름잡던 1970~80년대 라벨과 스카이블루 병형 색상을 현대적 감각으로 세련되게 표현했다. 소비자가 기대하는 깔끔한 느낌을 위해 오리지널 레시피에 기반해 16.9도의 주질을 적용했다. 진로의 오랜 빅모델인 두꺼비를 활용해 전방위적 캠페인도 전개했다.

그 결과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90% 이상을 차지하며 한번도 제3의 브랜드에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수도권 소주 시장에서 진로가 판을 뒤집는 브랜드로 떠올랐다. 참이슬은 대표 소주로서 위상을 굳건히 하고 진로는 젊고 트렌디한 소주로 성장시킨다는 투 트랙 전략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테라와의 시너지도 돋보였다. 소비자들이 ‘테슬라’, ‘테진아’라는 소맥 신조어를 만들어 확산시켰다.
하이트진로, ‘끌로 파는’ 마케팅이 빅히트 원동력

상황 3 주류 업계 치열한 경쟁
도전 3 ‘끌로 파는’ 마케팅으로 대응
테라와 진로가 역대급 성장세를 보이면서 경쟁사들의 반격이 거세지고 있다. 그야말로 치열한 전쟁 상황이다. 하이트진로는 압도적 스케일의 광고캠페인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준비중이다.

이런 마케팅은 두 가지 원칙과 세 가지 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다. 첫 번째 원칙은 ‘이전의 승리 전략이 다음 싸움에도 통할 것으로 생각하지 말자’이다.

오 상무는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할 때 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는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의 한 대목처럼 항상 새로운 시각에서 전략을 수립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원칙은 ‘마케팅을 위한 마케팅은 하지 말자’이다. 아무리 그럴싸해 보이는 전략이라도 영업이 실행하기 어려운 전략은 파기한다. 영업과 연결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가 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런 원칙들에 근거한 첫 번째 전략은 ‘제품이 곧 마케팅’이다. 소비자의 눈을 속이는 현란한 마케팅만으론 제품이 롱런할 수 없는 만큼 제품 개발부터 진정성을 담자는 것이다.

두 번째 전략은 ‘대중의 눈높이 보다 딱 반스텝 먼저’이다. 너무 과하지 않은,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제품과 마케팅을 위해 대중의 눈높이 보다 딱 반스텝 앞서 가려는 것이다.

세 번째 전략은 ‘디테일과 완성도를 위한 끌로 파는 노력’이다. 오 상무는 “브랜드의 성공과 실패는 한 끗 차이로 결정되고 그 한 끗 차이를 만드는 힘은 ‘끌로 파는 노력’”이라며 “디테일 하나, 완성도 하나가 소비자의 선택을 바꿀 수 있기에 소비자에게 보여지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한다”고 설명했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어떤 일이건 임계점을 넘느냐가 성공의 관건입니다. 임계점을 넘으려면 사소한 것이라도 디테일과 완성도를 높이는 노력이 습관화돼야 합니다.”

오성택 상무는 ‘끌로 파는 노력’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그런 노력을 통해 제품과 마케팅에서 조금 더 완성도를 높이고, 조금 더 차별화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 상무는 “마케터는 ‘이 정도면 됐어’라는 생각의 게으름을 경계하고 끊임없이 ‘뭔가 더 없을까’를 고민하고 완벽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케터로서 자신만의 ‘역사성’이 생기고 그 결과 ‘대체불가’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 상무는 “시장과 소비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기 때문에 마케터는 항상 자신의 무지와 부족함을 알고 겸손한 자세로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며 “사람이나 마케팅이나 쉽게 가려 하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장경영 선임기자 longrun@hankyung.com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마케팅에서는 소비자의 구매행동을 ⑴관여도(고관여 vs. 저관여)와 ⑵경쟁 브랜드 간의 차이(큼 vs. 작음)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이 중에서 특별히 소비자의 관여도 수준이 낮고, 경쟁 브랜드 간 차이가 거의 없다고 지각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보이는 구매행동을 ‘습관적 구매(habitual buying)’라고 한다. 이 경우 소비자들은 해당 브랜드에 강한 애착이 있어서 그 제품을 다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습관적으로 기존의 선택을 반복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화장실 휴지를 구매할 때 평소 선택하던 브랜드를 다시 습관적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화장실 휴지는 일반적으로 저관여 제품이고, 어차피 브랜드들 간의 차이도 크지 않다. 보통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평소 사던 것을 습관처럼 다시 구매한다.

이 때 마케터에게는 크게 두 가지의 대안이 있다. 먼저 자사의 브랜드가 이미 시장의 리더라면 굳이 소비자들의 습관적 구매를 깨뜨릴 이유가 없다. 이 경우 마케터의 최우선 목표는 습관적 구매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의 새로운 정보탐색을 어렵게 만들거나 필요 없게 만들어 기존의 습관적 구매를 계속 유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반대로 습관적 구매를 깨뜨리기 원하는 경쟁 브랜드는 전혀 다른 마케팅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이때 마케터들이 선택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소비자의 구매행동 유형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관여 상황이지만 경쟁 브랜드 간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새로운 브랜드 구매를 시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즉 ‘다양성추구(variety-seeking)’ 구매행동을 유도해 기존의 습관적 구매를 깨뜨려야 한다.

하이트진로 역시 ‘청정함, 리얼탄산’ 등 경쟁사와의 차이점을 집중적으로 어필하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브랜드 간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주는 ‘초록색병’을 사용한 것 역시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후 시장점유율이 올라가자 ‘테슬라, 테진아’와 같은 신조어를 활용해 새로운 습관적 구매를 유도한 것도 소비자의 행동을 잘 이해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마케팅의 핵심은 결국 소비자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마케터는 언제나 소비자의 최종 선택을 받길 원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선택은 단지 ‘결과’일 뿐이다. 결국 그 선택을 일으키는 ‘원인’과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마케터의 핵심 과제이다. 마케터들이 반드시 소비자 행동(consumer behavior) 이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코로나19 이전 저녁 모임 자리가 자유롭던 때의 일이다. 한 모임에서 지인이 물었다. “교수님, 테슬라 아세요?”

전기차 아니냐는 말에 지인은 식당 종업원에게 “‘카스처럼’ 말고 ‘테슬라’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주문을 받고 돌아서는 종업원에게 “‘테진아’도 주세요”라고 했다.

카스처럼, 테슬라, 테진아 모두 ‘소맥’의 재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카스처럼은 맥주 ‘카스’와 소주 ‘처음처럼’을, 테슬라는 맥주 ‘테라’와 소주 ‘참이슬’을, 그리고 테진아는 맥주 ‘테라’와 소주 ‘진로’를 혼합한 것이었다.

하이트진로의 성공적 마케팅에선 테슬라와 테진아가 한몫을 톡톡히 했다. ‘줄임말 효과’로 부를만하다.

언제부턴가 줄임말의 사용이 부쩍 늘었다.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사용하는 줄임말은 기성세대가 알아듣기 어려워 세대간 언어장벽을 걱정할 정도다.

국립국어원은 1994년부터 매년 ‘신어’를 조사해 발표한다. 신어(新語)는 새로 생긴 말, 또는 새로 귀화한 외래어를 가리킨다.

신어에는 새로 생긴 줄임말도 포함된다. 묭실(미용실), 샵쥐(시아버지), 셤니(시어머니), 낄끼빠빠(낄 때는 끼고 빠질 때는 빠져야 함),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남혐(남성을 싫어하고 미워함), 뇌섹(뇌가 섹시함),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기), 사바사(사람 바이 사람), 성덕(성공한 덕후), 세젤귀(세상에서 제일 귀여움), 여혐혐(여혐 현상을 싫어하고 미워함), 완피(완전히 피곤함), 우젤예(우주에서 제일 예쁨), 패테(패션 테러리스트) 등은 2015년 신어 자료집에 포함됐다.

이런 줄임말은 왜 생길까.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언어의 경제성, 모방 심리, 언어 유희성 추구 심리 등이 줄임말 생성의 동인이다.

언어의 경제성은 적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최대의 효과를 내려는 것이다. 낄끼빠빠, 내로남불, 복세편살 등이 대표적인 예다.

모방 심리는 이미 존재하는 다른 어휘를 모방하고자 하는 심리다. 세젤귀와 우젤예는 2014년 신어 자료집에 포함된 ‘세젤예(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를 본떠서 만들어진 줄임말 신어다. 테라와 참이슬을 합쳐 전기차 테슬라와 같은 줄임말을, 테라와 진로를 더해 가수 태진아와 유사한 줄임말을 만든 것은 모방 심리가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샵쥐, 셤니, 패테 등은 언어 유희성 추구 심리가 생성 동인이다. 재미나 풍자 또는 놀림과 조롱의 심리가 담겼다. 테슬라와 테진아는 언어 유희성 추구 심리와도 관련된다. 유머러스한 의미로 인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재미를 느끼게 된다.

하이트진로의 성공은 ‘제품이 마케팅이다’라는 하이트진로의 최우선 마케팅 전략에 힘입은 바 크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전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품이 좋다는 것을 알리는 일은 또 다른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름은 큰 역할을 한다.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한 번 들으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그런 이름을 찾기 위해 마케터는 고심을 거듭해야 한다.

앞의 예시에 있는 줄임말들은 어떤 세대에게는 익숙하지만 또 다른 세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말들이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았던 이런 줄임말을 이해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주류세대(?)와 동료의식을 느끼게 하는 요즈음이다. “엄마! 테슬라 한잔 할까?”라고 묻는 아들에게 “전기차를 마셔?”라는 말은 더이상 하지 말자. ‘테슬라 효과’에 세대간 교감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줄임말들의 생성 동인을 잘 활용한다면 좋은 제품임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케터들의 고민을 덜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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