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오는 12일 삼성전자, 제너럴모터스(GM),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등 반도체·자동차·기술기업 등을 불러 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이 자동차 업체에 이어 정보기술(IT) 기기, 가전제품 등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이 업계 관계자들과 반도체 칩 부족에 따른 영향과 해결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백악관은 의회, 동맹국과도 이 문제를 협의 중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미국 GM을 비롯해 세계 주요 자동차기업들은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반도체 부족으로 올해 1분기에 세계 자동차기업의 생산 차질이 130만 대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올 4분기까지는 공급이 안정화되지 않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반도체 부족은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노트북, 디스플레이, TV 등 가전제품 수요가 급증한 데다 최근 미국 한파, 일본 차량용 반도체 기업 르네사스의 공장 화재 등이 겹친 결과다. 게다가 지난달 31일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1위 TSMC의 대만 공장에서 불이 나면서 반도체 대란에 대한 불안 심리가 더 커졌다.

반도체 업체들은 가전제품용 반도체 생산만으로도 수요를 맞추기가 힘들어 수익성 낮은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늘리는 데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이번 회의에서 장·단기 반도체 수급 상황과 대책을 점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체들에 미국 내 공장 증설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내 생산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인텔은 이미 지난달 23일 애리조나주에 200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공장 두 곳을 새로 짓기로 했다. 삼성전자도 텍사스주 오스틴공장 증설을 검토 중이다.

대만 TSMC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인 지난해 120억달러를 들여 애리조나주에 반도체공장을 짓기로 약속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은 낸드플래시 세계 2위인 일본 기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8년간 2조3000억달러에 달하는 인프라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미국 반도체산업에 5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엔 반도체,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의 공급망을 재검토해 권고안을 내라고 행정부에 지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를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리는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를 하루 앞둔 1일 언론 브리핑에서 남중국해 문제와 함께 반도체, 공급망 등을 포함한 기술 문제도 회의 의제에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세 나라는 반도체 제조 기술의 미래에 많은 키를 쥐고 있다”며 “우리는 이 민감한 공급망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다가올 규범·표준 논의에서 (기존 규칙을) 지켜내기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