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 북쉘프-회장님의 메모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아는 그대로 실천하는' 인물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지식은 오로지 실천할 때만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 최고의 행동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소문난 책벌레였던 그는 책이야말로 누군가가 평생에 걸쳐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가장 빠르게, 가장 적은 비용으로 흡수할 수 있는 배움의 성전이란 사실도 잘 알았다. 이런 제프 베이조스가 가장 즐겨 읽었던 책 중 하나는 한 기업인이 평소 직원들에게 보냈던 메모를 묶어낸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탁월한 성과를 이뤄낸 뛰어난 경영인이다. 워런 버핏이 이 저자에 대해 “그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보다 뛰어나다. 브리지 게임, 마술 묘기, 개 훈련, 차익 거래 등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분야에서 그는 나를 능가한다”라고 익살스럽게 소개했을 정도다.

1949년, 스물두 살의 한 젊은이가 미국 월스트리트에 있는 작은 투자은행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한다. 30년 뒤 그는 이 회사의 CEO가 됐고, 이후 21년간 회사를 이끌면서 군소 투자은행에 불과했던 회사를 전 세계 금융투자업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회사로 키워낸다.

월스트리트에서 그가 ‘에이스Ace(최고, 아주 좋다는 뜻)’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메모를 쓰는 회장님은 바로 앨런 C. 그린버그 전 베어스턴스 회장, 일명 ‘에이스’ 그린버그다.

그는 뛰어난 경영 실적만큼이나 직원들에게 꾸준히 글을 써서 보내는 것으로도 유명한 경영자였다. 특별히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만 직원들에게 글을 쓴 게 아니다.

‘메모’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그리 길지 않은 글을 통해 비록 사소해 보이지만 신경 써서 챙겨야 하는 일상 업무와 금융인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를 직원들에게 전해왔다.

그가 직원들에게 보냈던 메모들은 이후 《회장님의 메모(Memos from the Chairman)》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제프 베이조스가 틈날 때마다 들춰 보며 교훈을 얻었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비용 절감에 목을 매는 짠돌이로 유명한 베이조스이기에 줄곧 비용 절감과 절약 정신을 강조해온 이 인물의 메모에 마음이 더 끌렸을 것이다.

그린버그는 글의 내용만큼이나 자신의 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들어낸 가공의 철학자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유머스럽게 전달하기도 했고 또 자신만의 독창적인 어휘도 여럿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게 바로 PSD 학위다.

그린버그는 직원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MBA(경영전문대학원 석사) 학위보다는 PSD 학위가 경력과 인생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하며, PSD 학위가 있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원하는 인재라고 강조했다.

PSD 학위에 대해 들어본 독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린버그의 메모를 읽은 베어스턴스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학위 역시 그린버그가 만들어낸 가공의 학위니까 말이다. 그린버그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PSD 학위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전 직원에게 보낸 이 짧은 메모의 끝부분에 이르러 PSD 학위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최근 들어 MBA 출신을 고용하려는 기업의 광고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8년 전, 직원이 700명이었을 때나 지금 2600명으로 늘어났을 때나 변함없이 고수해오고 있는 회사 정책을 계속해서 밀고 나갈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은 승진이겠지요. 설령 MBA 학위를 가진 사람이 우리 회사에 지원한다 하더라도 MBA 학위 때문에 그 사람을 홀대하는 일은 없겠지만 진짜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PSD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MBA 출신들끼리의 경쟁만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그렇지, 사실 알고 보면 이 회사도 PSD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세웠고 지금도 찾아보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똑똑하다면, 사이 루이스나 거스 레비스, 버니 래스커스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모두 고등학교 졸업장과 PSD 학위만 가지고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이지요.”

“PSD란 가난하지만 똑똑하고 부자가 되고자 하는 강한 열망

(Poor, Smart and a Deep desire to become rich)을 지닌 사람을 뜻합니다."

자신의 메시지를 웃음과 함께 더 효과적으로로 명확하게 전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