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문의 이어져…배임 고발·소송 가능성 대비

은행팀 = 정부는 재무 건전성을 명분으로 주주 배당 삭감을 요구하고, 여권은 이익 공유제 참여를 압박하자 금융지주와 주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일부 금융지주들은 만일의 소송 등에 대비해 주주 이익을 줄이는 대신 불특정 다수를 위해 기금에 출연하는 경영행위 등에 위법 소지가 있는지 검토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 "주주 반대 입장 당국에 전해달라" 외국인 주주 요청도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주요 금융지주사의 IR(투자자 대응·관리) 담당 부서에는 개인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배당·이익공유제 관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주요 질문은 금융위위원회가 최근 권고한 '배당성향 20% 이내' 지침을 따를 것인지, 정치권이 압박하는대로 이익공유 차원에서 서민금융기금 등에 사실상 기부 형태로 참여할 것인지 등이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20% 배당성향 제한 의결 소식을 듣고 IR 부서 쪽으로 개인 투자자들이 전화를 걸어 20% 이내로 결정됐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당국의 배당 규제 얘기가 나온 지난해 말 이후 외국인 주주들이 IR 부서에 계속 관련 사안을 문의하고 있다"며 "배당성향 권고에 대한 주주의 반대 입장을 대신 당국에 전달해달라는 요청도 많다"고 말했다.

앞서 28일 금융위원회는 결국 '순이익의 20% 이내 배당(배당성향 20% 이내)'을 은행권에 권고하기로 의결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향후 대출 연체 등 금융 시스템 건전성이 우려되는 만큼, 금융지주사와 은행이 주주 배당을 줄여 재원을 충분히 확보하라는 취지다.

아직 금융지주사들은 이 권고에 따를지 입장을 분명히 정하지 못했다.

배당 수준 관련 질문에 5대 금융지주사들은 공통적으로 "작년 기말 배당 정책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며 "금융당국의 권고안뿐 아니라 실적, 손실흡수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3월 주주총회에서 결정될 사안"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결국 금융지주사들이 당국의 뜻대로 배당성향을 20% 이내로 맞출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여러 차례 배당 자제를 요청하고 권고안까지 의결한 만큼, 이를 대놓고 무시할 수 있는 금융지주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2019년도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주주 배당금 비율)은 5대 금융지주별로 ▲ KB 26%(3조3천118억원 중 8천610억원) ▲ 신한 25.97%(3천4천35억원 중 8천839억원) ▲ 하나 25.78%(2조3천916억원 중 6천165억원) ▲ 우리 27%(1조8천722억원 중 5천56억원) ▲ 농협 28.1%(1조7천796억원 중 5천억원) 수준이었다.

만약 금융지주사들이 당국 권고대로 20%로 일괄적으로 줄인다면, 아무리 적어도 전년도 배당 비율의 5분의 1이 깎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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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대 금융지주 배당성향 │
│ ※ 각 지주사 자료 취합 │
├───────┬───────────────────┬─────────┤
│ │2019년도 배당성향 │2020년도 기말 │
│ │(당기순이익 중 주주 배당금 비율) │배당성향 │
├───────┼───────────────────┼─────────┤
│KB금융지주 │26%(3조3천118억원 중 8천610억원) │금융위원회 '배당성│
├───────┼───────────────────┤향 20%이내 권고' │
│신한금융지주 │25.97%(3천4천35억원 중 8천839억원) │의결(1월 28일) │
├───────┼───────────────────┤ │
│하나금융지주 │25.78%(2조3천916억원 중 6천165억원) │ │
├───────┼───────────────────┤ │
│우리금융지주 │27%(1조8천722억원 중 5천56억원) │ │
├───────┼───────────────────┤ │
│농협금융지주 │28.1%(1조7천796억원 중 5천억원) │ │
└───────┴───────────────────┴─────────┘
◇ "배당 줄여 재정 확보하라면서 이익은 공유하라는 건 모순"
정부의 이런 배당 축소 권고는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금융사 이익공유제 참여 요구와 얽혀 주주들로부터 더 큰 반발을 사고 있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배당성향이 정부의 권고에 따라 2019년보다 5분의 1이나 줄어드는 사실을 주주들이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며 "더구나 자기 돈을 투자한, 금융사의 실제 주인격인 주주들이 배당을 통해 이익을 나눠 갖는 것은 막으면서 금융사의 이익을 불특정 다수를 위해 기부 등의 형식으로 내놓으라는(이익공유제 참여) 주장은 더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재정 건전성을 위해 배당을 줄여 충격 흡수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라면서, 동시에 코로나19 피해 계층을 위해 금융지주사와 은행이 이익을 스스로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모순적"이라고 꼬집었다.

아직 금융권의 이익공유제 참여 여부와 규모 등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금융지주사들은 이런 주주들의 반발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내부적으로 법률 검토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나 정치권 등 외부 압력에 따라 금융사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되면, 일부 주주들이 경영진을 형법상 업무상배임 혐의로 고발하거나 상법상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일단 배당 성향과 관련해서는 법무 쪽이 검토한 결과, 지침에 따라 축소해도 법적으로 크게 문제가 있지는 않다고 보는 것 같다"며 "배당성향이 25% 등으로 정해진 바가 없고, 주주들로서는 20%이내 배당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총에서 부결시킬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향후 이익공유제 참여 등이 결정돼 배당 축소와 함께 논란이 되면 법률 검토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법무 담당 부서가 배당 제한 등 최근 이슈들의 위법 여부를 대략 검토했지만, 워낙 배임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 아직 해당 여부를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