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종료될 예정인 공매도 금지 조치가 연장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공매도 재개 입장을 밝혔던 금융당국이 개인투자자와 정치권의 반발에 유보적인 태도를 드러내면서다. 여당에 이어 국무총리까지 연장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제도보다 정치가 앞서는 '정치금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 사진=뉴스1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 사진=뉴스1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세균 국무총리는 전날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공매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가 아니라 모든 나라가 다 갖고 있어 글로벌 표준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우리나라에서 공매도 제도는 지금까지 바람직하게 운용되지 못했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개선 내지 보완 대책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운용하던 방식으로 운용하는 건 곤란하다"며 "외국인·기관 투자자들이 룰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소액·개인 투자자들이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 그에 대한 치유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리에 여당까지, 계속되는 '금지 연장' 압박

정 총리의 발언은 공매도 제도 개선이 선행되어야 공매도를 재개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실상 공매도 금지 조치의 추가 연장이 결정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 총리는 지난 14일에도 "정부 입장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 입장을 밝힐 수는 없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저는 (공매도를) 좋지 않은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공매도 금지를 연장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은 "전반적인 당 분위기는 시중 유동성과 개인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공매도의 폐해를 정리해가면서 우선 (금지를) 연장하고 제도를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라며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국회와 협의하겠다고 하지 않았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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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리 좁아진 금융당국…정치권 눈치만

일각에선 정부와 여당이 오는 6월까지 공매도 금지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공매도 금지 연장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금융당국의 설자리는 좁아졌다. 금융위원회는 그동안 기본적으로 3월 공매도를 재개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금융위는 지난 11일 "공매도 재개를 목표로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시장조성자 제도 개선,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 제고 등 제도 개선을 마무리해 나갈 계획"이라고 공지한 바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지난 8일 회의에서 "국민들이 증시의 한 축이 되면서 주가지수가 3100포인트를 상회했다"며 "이렇게 된 것은 외국인 순매수가 기여한 바가 크다. 금융위는 긍정적 흐름을 지속·강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수급을 유지하기 위해 글로벌 표준인 공매도를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셈이다.

"정치금융 되살아났다"…향후 재개 더 어려울 것

그러나 정치권의 압박이 이어지고 여론이 악화하자 금융위는 한발 물러섰다. 공매도 재개 입장을 일주일 만에 '결정된 게 없다'는 유보적인 입장으로 슬쩍 바꿨다.

은 위원장은 공매도 재개 가능성을 시사한 지 10일 만인 지난 18일 "저를 포함해 금융위의 어느 누구도 공매도 조치에 대해 속 시원하게 말씀 드릴 수 없다"며 "이는 9인으로 구성된 금융위 회의에서 결정할 사안이다. 한국은행 금통위의 금리 결정에 대해 한은 직원 누구도 단정적으로 발언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폈다.

이에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선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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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의식해 공매도 연장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공매도 재개는 물 건너갔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더 강화되면서 향후 공매도 재개는 더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정치가 제도 개선을 앞서는 정치금융이 되살아났다"며 "공매도가 왜 도입됐고, 어떤 순기능이 있는지에 대한 분석은 사라졌다"고 했다. 이어 "공매도 재개를 주장하는 이들은 적폐가 됐다"며 "정말 한탄스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