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실무자들이 어렵사리 만든 합의안을 최고 의사결정자가 거부했다. 공평하지 않으니 상대가 돈을 더 부담하라는 것이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잠정 합의안을 보고받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얘기다. “그들(한국)이 특정 금액을 제시했지만 내가 이를 거부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실무자들 입장은 난감하다. 반년 넘게 이어진 협상 아닌가. 더 이상 무엇을 주고받을 수 있겠는가? 공은 최고 결정자에게 넘어갔다.

이런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파고들면 돌파구가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사례로 풀어보자. 그는 왜 합의안을 거부하는가?

첫째, 정치적 욕구다. 그에게 가장 큰 이슈는 11월 대선이다. 재선을 위한 치적이 필요하다. 2016년 선거 공약에서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공언했다. 금액적인 결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개인적 성과다. 실무선에서 합의한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그답지 않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상 간 담판을 통해 파이를 키우고 철저하게 자신의 공으로 가져가겠다는 의도다. 그래서 더 많이 가져오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실무진에서 합의된 것이 최종이고 최선이었다는 것이 입증될 테니까.

둘째, 경제적 욕구다. 그에게 무역적자는 또 다른 뇌관이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이를 대변한다. 무역수지는 기업 간 거래라서 조절에 한계가 있다. 이를 인지한 그는 무역외수지에 눈을 돌린다. 정상 간 담판으로 가능한 것이 무기 거래다. 안보상 이유로 무역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만약 방위비 증액이 어렵다면 무기 구매를 늘리라는 것이 그의 숨은 욕구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최근 F35A 스텔스 전투기와 이지스함 등 6000억원 규모의 해외 무기 도입 예산을 삭감했다. 불만이 생긴 셈이다.

셋째, 개인적 욕구다. 최근 코로나 사태를 섣부르게 대처했다가 표심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모멘텀이 필요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언론의 힘을 잘 안다. 양국 실무진의 합의 내용을 자신이 거절했다는 것을 자랑삼아 공개 석상에서 밝힌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심리적 욕구의 발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협상의 관점으로 풀어 보자.

우선 상대 요구를 순순히 수용해선 안 된다. 단 부드럽게 맞서는 것이 좋다. 합의된 조건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임을 밝히는 것이다. 합리적인 선을 벗어나는 양보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확실하게 못 박아야 한다.

그다음에는 시간적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 상대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결렬됐을 때 치르게 될 비용,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1주일이든 한 달이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절하면 된다.

다음 단계는 ‘황금의 다리’를 놓는 일이다. 이것은 일종의 ‘명분’이나 ‘핑계’를 말한다. ‘노(no)’했던 사람이 ‘예스(yes)’라고 말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상대의 체면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일보 후퇴가 아니라 보다 나은 해결을 위한 일보 전진으로 해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최고 의사결정자가 합의 거부 땐 '작은 선물'로 명분 주고 돌파하라
작은 선물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선물의 포장을 정말 멋지게 하는 것이다. 내용물은 작더라도 큰 것처럼 포장해야 한다. 효과는 선물을 주는 사람이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태석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